사라지는
하나이와


 밤 동안에 눅눅하게 젖어있다 마른 눈꺼풀 위로 여린 햇빛이 쏟아졌다. 두껍지 않은 커튼 사이는 시간은 흘렀고, 이불 위로 드러난 어깨와 얼굴이 따스해질 즈음에 이와이즈미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고개를 간신히 들어 바로 머리맡에 놓여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아침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시간이었다. 시계를 도로 내려놓은 이와이즈미는 침대 위에서 굴러 한 바퀴를 다 채우지 못하고 마른 발바닥으로 바닥을 내딛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미처 잡지 못한 이불이 허리서부터 그대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훅 끼치는 한기에 그는 팔짱을 꼈다가 손바닥으로 팔뚝을 문질렀다. 등허리가 부르르 떨렸다. 이와이즈미는 걸칠 옷가지를 찾았다. 바닥에 떨어져있을 거라 생각한 옷들은 옷걸이에 얌전히 걸려 있었다. 그는 어제도 입었던 흰 티셔츠와 편한 바지를 찾아 손에 들고서 검지로 느릿하게 속옷을 골랐다. 적당히 회색 드로즈를 고르긴 했지만 당장 입을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씻고서 입을까. 몸이 끈적거리거나 꿉꿉하지는 않았다. 다정한 연인 덕분이었다. 오랜 정사에 지쳐 졸거나 아예 곯아떨어졌을 때뿐만 아니라 또렷하게 눈을 마주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마키는 그의 몸을 닦아주곤 했다. 처음에는 얼굴이 도로 빨개질 정도로 부끄럽고 쑥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어느새 익숙해져있었다.


 어제 콘돔을 몇 개나 썼는지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는데 그러고도 제 몸을 닦아준 것일까.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얼굴을 문질렀다. 수염이 난 것인지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그는 몸을 숙여 침대에 반쯤만 걸쳐있는 이불로 제 몸을 감쌌다. 채 식지 않은 이불은 따스했고 발꿈치 뒤로 늘어져 바닥에 조금 끌렸다. 그는 드로즈를 손에 든 채로 문을 열고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나온 이와이즈미는 욕실 수납함에 드로즈를 쏙 넣어두고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베이컨이라도 구운 것인지 노릇하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났다. 물이 부글부글 끓는지 주전자는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화들짝 놀라며 가스레인지로 다가가는 분홍색 머리통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웃었다. 그는 마트에서 함께 골랐던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똑같은 디자인과 색상, 그리고 똑같은 사이즈로 구매했던 앞치마는 두 사람에게 잘 어울렸다. 티셔츠도 입지 않고 앞치마를 걸친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감기에라도 걸리면 어떡할 것이냐 잔소리할 생각으로 입을 벌렸다. 그의 시선은 이제 막 어깨를 지나 점차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벌어졌던 입은 매듭 아래서부터 점차 다물렸다. 이와이즈미는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등을 가볍게 때렸다. 어깨가 가볍게 튀어올랐다.


“하나마키!”

“아야, 아파…. 잘 잤어?”

"잘 잤다마다. 너, 옷도 안 입고, 이게, 무슨."


 하나마키는 가스레인지 불을 끄며 돌아섰다. 뒷머리는 너저분하게 뻗쳐 있었지만 얼굴에는 졸음이 달아난지 오래였다. 기대했던 입맞춤은 커녕 배구했던 사람 아니랄까봐 얻어맞은 등이 화끈거리다 못해 지끈거렸다. 등 뒤로 최대한 손을 끌어올려 맞은 자리를 더듬다 이와이즈미가 의자를 꺼내 앉는 것을 보고 웃었다. 지난 밤의 흔적이 가득한 몸을 이불로만 감싸고 나온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등이 화끈거려 단박에 발견하지 못한 양뺨도 시야에 들어왔다. 하나마키는 눈웃음을 지으며 허리에 양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오른쪽 어깨가 앞을 향하도록 허리를 비틀며 턱을 치켜들었다. 그대로 잠시 그를 내려다보던 하나마키는 이윽고 반대쪽으로도 상체를 비틀었다. 천연덕스럽게 윙크하는 것까지 본 이와이즈미는 얼굴을 문질렀다. 듬성듬성한 손가락 사이로 여러 포즈를 취하는 그가 보였다. 웃으며 자신을 놀리다 뒤로 돌아서자 이와이즈미는 안심하며 의자에 등을 아주 기대어 앉았다. 맨 몸에 앞치마라니…. 그제야 그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도드라지는 아킬레스건에서부터 뻗어가는 종아리와 탄탄한 허벅지, 정장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엉덩이, 사랑스럽게 리본으로 묶은 앞치마 끈을 사이에 두고 사선으로 옴폭 들어간 보조개(보조개라고 부르는 것이 낯설었으나 이와이즈미는 제게 뒷모습을 보이며 아폴로의 보조개가 있다며 환하게 웃던 것을 기억했다.)와 움푹 파인 등줄기와…….


 이와이즈미는 시선이 마주치자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넋을 놓고 그의 뒷모습을 아주 핥듯이 쳐다보고 있었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물론 하나마키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사뿐사뿐한 발걸음으로 다가간 그는 이와이즈미의 목에 팔을 두르며 무릎에 앉았다. 고개를 숙여 꼭 다물린 손바닥 사이에 입을 맞췄다.


"하지메군, 얼굴 안 보여줄 거예요?"


"하나마키, 일어나면,"


"어허."


 하나마키가 봐주는 일은 없었다. 아예 다리를 벌려 마주 보도록 앉자 이와이즈미는 한참 머뭇거리다 손을 내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내보였다. 턱끝을 스치는 간지러운 한숨에 웃음이 절로 샜다. 부엌에 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어깨에 듬뿍 묻어 흘러내리고 분홍색 머리칼이 반짝거렸다. 이와이즈미는 이불에 파묻혀있던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따뜻한 손끝은 이마를 가리던 앞머리를 쓸어넘겼다.엄지가 눈썹을 스치자 하나마키는 시선을 내리깔았고 관자놀이를 지나 뺨을 스치자 다시 그를 바라봤다. 달콤한 것을 넘어서 들척지근해지는 눈맛춤에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반쯤 돌리며 입을 열었다.


"타카히로. 부끄러우니까 좀…."

"눈도 못 뗐으면서. 마음에 들어?"


  얼굴을 만지던 손을 잡아챈 하나마키는 그대로 앞치마 안으로 그 손을 가져갔다. 자신이 쥔 대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손끝이 몸에 닿자 기분 좋은 소름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이미 흥분한 것 같기도 했다. 등 뒤에 있는 프라이팬은 이미 식었을 것이다. 써니 사이드 업으로 익어가던 계란 프라이도, 취향에 맞게 구워 접시에 가지런히 옮겨둔 베이컨도, 토스트기에 꽂혀있는 토스트도 식었을 것이다. 어깨서부터 골반까지 천천히 쓰다듬던 손이 등으로 넘어가 밤 동안에 난 손톱자국을 쓸어만지자 하나마키는 입술을 깨물며고개를 젖혔다. 아주 잠깐이었다. 고개를 바로 하고 엉덩이를 움직여 가까이 앉자 기대한 입술 대신 코끝이 맞닿았다. 등에 팔을 두르자 완전히 맞물린 몸을 통해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이와이즈미가 슬그머니 끌어다 덮어준 이불과 따뜻한 체온 사이에서 호흡하던 하나마키의 얼굴에 짓궃은 미소가 떠올랐다.


"흥분했어?"


 이와이즈미는 뭐라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한 탓에 입술만 달싹거리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흥분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기에는 서로가 너무나도 가까웠다. 가까스로 "너도 마찬가지잖아." 하고 대꾸할 말이 떠올라 입을 열었을 때 양뺨에 입술이 닿았다. 쪽, 쪽, 연달아 입 맞추는 소리는 만화영화에서 나올 것 같았다. 물론 왼쪽에, 그리고 오른쪽에 입맞추는 사이 엿본 표정은 이미 다 안다고 말하는 것 같아 얄미웠지만 홍안에 떠오른 환한 미소는 아름다웠다. 이와이즈미는 눈썹을 찡그리며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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