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하나이와

쓰면서 들은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nz8DVpcyLZM





 오랜만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들어온 집에서는 먼지 냄새가 났다. 이와이즈미는 손에 들고 있던 열쇠를 약 일주일 만에 유리그릇에 떨어뜨려 넣었다. 열쇠가 하나가 더 있었던 탓에 쨍그랑, 하고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딱딱하게 굳어있던 어깨가 뚝 떨어졌다. 이와이즈미는 거슬해진 손을 들어 뺨을 문질렀다. 까슬하게 난 수염이 느껴졌다. 회사 건물에 아주 나오기 전에 화장실에서 면도라도 할 걸 그랬나.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손과 발로 벽과 바닥을 더듬어 방에 들어가 몸을 눕히기가 무섭게 잠들고, 알림소리에 깨어나 씻고 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오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은 오늘이 금요일이고, 내일부터 이틀 간 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금요일에도 쉴 수 있었다. 그동안 그를 괴롭혔던 프로젝트도 일단락되어 회사에서 밤을 샐 일도, 휴일에 출근해야 할 일도 없었다. 그는 문득 주머니가 무거웠다. 손을 집어넣어 휴대전화를 꺼내며 휴일 동안에만 꺼둘까 하는 생각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곱게 넣어뒀다. 그리고 천천히 구두를 벗고 현관 너머로 발을 디뎠다. 고개를 돌리자 굽이 꽤나 닳은 것이 보였다. 광은 그래도 때때로 냈기에 볼품없지는 않았지만. 오래 신은 구두를 한참 응시하던 이와이즈미는 뒤늦게 어깨에 코를 묻으며 냄새를 맡았다. 이상한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그가 한참을 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동안, 거실을 가로지르는 발소리가 점차 그에게 가까워졌다.


 하지메, 왜 안 들어오고…….


 …아, 타카히로.


 이와이즈미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프로젝트 내내 떠올랐지만 한 집에 살면서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리웠던 얼굴. 사랑하는 얼굴.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하나마키는 먼저 한 발자국 더 다가가 그를 끌어안았다. 꽈악 끌어안는 팔과 함께 느껴지는 향기에 그는 피곤함이 어깨에 켜켜히 쌓이는 것을 느꼈다. 점점 더 몸이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두덩이도. 그는 그의 품 안에서 반 바퀴를 돌았다. 눈에 한 가득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차올랐다. 그의 눈에 자신의 얼굴이 비쳐보였다.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숙여 그의 어깨에 이마를 문질렀다. 타카히로…….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하나마키는 웃으며 그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하지메, 내 얼굴 보자마자 안심했어? 졸려? 어깨에 기댄 고개가 천천히 끄덕이는 것이 느껴졌고, 그는 천천히 뺨에 입을 맞추고 이마를 드러내느라 넘긴 앞머리대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따뜻한 품에 자꾸만 눈이 감기려는 것 같아 이와이즈미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잡고 밀어냈다. 하나마키는 언제나 그랬듯 두어 발자국 뒤로 밀려나주었다.


 저녁은 먹었어?


 아직. 당신은?


 그리웠어. 당신이라고 불러주는 이, 목소리! 오늘 끝난다고 했던 것 같아서 기다렸어.


 안 끝났으면 어쩌려고…….


 왔으니까 됐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늦게 자켓을 벗었다. 옷방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큼지막한 손이 어깨를 감싸며 방향을 돌렸다. 그의 시야에 바로 들어온 것은 욕실이었다. 그리고 욕실 문 옆에 있는 테이블에 놓여있는 생일선물로 자신이 건넸던 화병과, 화사한 꽃들도. 옷은 가져다 줄테니까, 씻어. 목욕하고 싶지 않아? 부드럽게 속삭이며 어깨를 천천히 주무르는 손길에 그는 절로 나오는 신음소리를 삼키지 않았다. 당장 필요한 것은 향기가 가득한 편한 옷도 따뜻한 목욕도 아니라 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쑥스러운 탓에 고개만 끄덕였다. 어깨를 두어 번 더 주무르던 손은 곧 팔뚝을 주무르고 허리를 가볍게 만졌다. 점점 내려가는 손길이 기어코 엉덩이를 만지는 것에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흔들었다. 손 떼. 조금은 받아줄 줄 알았건만 뚝 떨어지는 단호한 목소리에 하나마키는 입술을 비죽였다. 오랜만에 만지는 애인 엉덩이였건만. 그는 혹시나 하고 주물렀다가 날아오는 매서운 눈빛에 손을 떼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며 부엌으로 냉큼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와이즈미는 혀를 내둘렀다.




 대부분의 욕실에 들어설 때 피부로 바로 느껴지는 눅눅하고 차가운 공기 대신 따스함과 부드러운 향기로 가득한 욕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정말로 집에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침대에 누우면 완전히 집에 돌아온 것 같겠지. 잠들었다가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그의 얼굴 위로 햇빛이 흐르는 것을 본다면 더.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편이니 자신보다 더 먼저 일어나서, 제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깨어나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그의 눈동자일지도 모른다.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셔츠를 벗고 바지를 벗고 속옷과 양말까지 모조리 벗어 문 앞에 두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헤어나오며 칫솔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칫솔모 위로 치약을 눌러 짰다. 치약 뚜껑을 닫고 칫솔질을 하다가 문득 예전처럼 치약 가운데를 눌러 짰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강 엄지손가락 두 개만으로 끄트머리서부터 밀어올려 옴폭 파였던 가운데를 다시 채우고는 다시 양치질을 했다. 플라스틱 컵에 물을 받아 헹구어 내고 혀를 닦고 칫솔을 씻자 키스가 하고 싶어졌다. 아직은 안되지. 이와이즈미는 뺨을 문지르다가 거울을 봤다. 피곤함이 아주 덕지덕지 묻어있는 데다가 수염까지 나서 지저분해 보였다. 그는 손을 뻗어 면도기를 꺼내 내려놓고 쉐이빙폼을 움켜쥐고는 손바닥에 모자르는 일 없도록 거품을 듬뿍 짰다. 그리고 턱에 천천히 발랐다. 묵직한 하얀 거품이 시원했다. 남은 것을 보다가 손을 씻은 이와이즈미는 거울에 이리저리 얼굴을 비추어보다 면도기를 들었다. 거품을 닦아내듯이 차례차례, 급하지 않게 면도를 한 그는 면도기를 씻고 세수를 하고서 세면대를 정리한 다음, 말끔해진 얼굴을 제대로 관찰했다. 한결 깔끔해보였다. 그는 면도기와 쉐이빙폼을 제자리에 두고 드디어 욕조로 다가갔다.


 욕조에 뜨뜻한 물을 받으며 찬장을 뒤적거리던 그는 누군가가 미리 쪼개둔 입욕제를 발견했다. 이미 넣기에는 물이 많이 차있었다. 뒤늦게 넣어봤자 아쉬움만 커질 것을 알기에 이와이즈미는 입욕제를 넣는 대신에 도로 넣어두는 것을 택했다. 물을 잠그고 몸을 담갔다. 온 몸이 뜨거운 물에 넣은 국수다발 마냥 풀어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천천히 두 발을 뻗고 욕조에 기댄 등을 점점 미끄러뜨렸다. 뒷통수가 욕조에 간신히 걸쳐졌을 때가 되어서야 그는 멈췄다. 눈을 감고, 그러나 잠들지 않기 위해 노래를 흥얼거던 그는 수도꼭지를 끝까지 닫지 않았는지 똑, 하고 물방울이 떨어져 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그가 기다린지 얼마나 되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와이즈미는 욕조에서 일어났다. 수면에서 빠져나온 몸이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욕조 바깥으로 나와 가볍게 씻고 물기를 닦은 다음 로션을 바르고 걸려있는 가운을 입었다. 어깨에 걸친 수건으로 머리를 꾹꾹 눌러 닦던 그는 곧 욕조에 받은 물을 조금 바라보다가 손을 집어 넣었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마개를 힘을 주어 당기자 점차 물이 소용돌이를 그리며 아래로, 자신은 알지 못하는 아래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변기물을 내리는 것 같은 소리까지 났다. 그는 제 손에 들려있는 마개를 욕조 아래, 언제나 걸어두는 데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수도꼭지를 다시 한 번, 제대로 눌러 잠갔다.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맛있는 냄새들이 그의 코를 자극했다. 꼬르륵, 배가 요동쳤다. 의자에 앉자 바로 앞에 음식이 놓였다. 숟가락으로 툭 건드리면 파들파들 떨 것만 같은 오믈렛이었다. 그리고 맞은편 자리에도 오믈렛이 놓였다. 혹시라도 망한 것을 먹지 않을까 하고 쳐다본 것이었고, 오늘은 둘 다 성공한 모양이었는지 같은 모양새였다. 오늘은, 이라고 생각했던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는 음식 솜씨가 저보다도 뛰어났으니 오늘도, 라고 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물론 그가 만들어준 요리를 먹는 게 오랜만이었지만. 이어 다른 반찬들도 차례차례 놓였고, 마지막으로 하나마키가 비어있던 맞은편에 앉았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도 입꼬리를 올려 조금 웃었다.


 잘 먹겠습니다. 고마워.


 응, 나도 잘 먹겠습니다. 사랑해.


 그래도 함께 지낸 세월이 없던 것은 아닌지 사랑한다는 말 하나하나에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처럼 일일이 얼굴을 붉히지는 않았다. 이와이즈미도 입을 열어 사랑한다고 말했다. 조금 더 웃음이 깊어졌다. 하나마키는 그의 얼굴을 보다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의문에 찬 얼굴로 보는 것에 그는 속삭였다.


 키스,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오랜만인데.


 능구렁이 같은 녀석. 이와이즈미는 바라보다 의자에서 조금 일어나며 그의 뺨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감싸쥐지 않은 쪽 뺨에 진하게 키스했다. 그리고 왠지 모를 아쉬움에 입술에도 도장을 찍듯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사랑해, 타카히로. 속삭이는 말에 하나마키는 고개를 뒤로 바짝 물렸다.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자리에 앉아 젓가락 옆에 놓여있는 나이프를 들었다. 능글맞은 녀석.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믈렛을 조심스럽게 갈랐다. 나이프가 닿는 대로 갈라져 부드러운 속을 보이는 오믈렛은 정말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는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어 오믈렛을 천천히 먹으려 애썼다. 배가 고픈 탓에 급해지려는 숟가락질을 늦춰가며 오믈렛을 먹고, 다른 반찬을 먹던 그는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아있는 그를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급하게 고개를 숙여 오믈렛을 먹는 모습에 그는 조금 웃었다. 오랜만에 마주친 분홍색 정수리는 여느 때처럼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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