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테루다이(스가)




 맞붙어있던 고개가 떨어졌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찬 공기가 훅 끼쳤다. 닫혀있던 문이 어느새 열려있었다. 붉어진 입술은 젖어있었지만 찬 바람에 금방이라도 마를 것 같아 스가와라는 곧장 안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꿈지럭거리며 슬금슬금 주머니로 들어가던 손끝에 딱딱한 립밤이 걸렸다. 손톱에 긁히며 나는 갉작거리고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마치 뼈마디가 움직이는 소리처럼 들렸다. 몇 번을 헛돌았지만 이윽고, 힘을 단단히 준 두 손가락 끝으로 간신히 립밤을 잡아채어 끄집어냈다. 뚜껑을 열자 나는 뽁 소리는 앙증맞았다. 뚜껑은 새끼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으로 간신히 쥔 채로 립밤을 연필 잡듯이 잡은 스가와라는 곧 반대쪽 손을 뻗어 여즉까지 몽롱하게 상기된 뺨을 감싸 쥐었다. 그러자 오래도록 지속될 것 같았던 뺨과 눈과 입술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눈가 아래로 주름이 잡혔다. 주름이라는 말이 어색한 나이이니 어쩌면 보조개일지도 모른다. 혹은 아주 흐려진 흉터의 흔적일 수도 있다. 스가와라는 그를 응시하다 부드럽게 웃으며 입술 선을 따라 립밤을 바르고 그 안을 꼼꼼하게 채웠다.


"됐다. 예쁘네, 다이치."

"예쁘긴 무슨. 의료팀에는 꼭 들려."


 사와무라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촉촉해진 입술이 퍽 어색한지 그는 몇 번이고 입을 다물었다 떼기를 반복했다. 있으나 마나 한 얄팍한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있는 얼굴은 언제나처럼 웃되 제대로 된 대답은 하지 않았다. 다른 구역에 비하면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TM 구역이었지만 요즘 따라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터졌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센티넬들이 소속된 구역이긴 했지만 그들이 TM 구역에 머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모든 일은 그와 같은 '애매한' 센티넬들의 차지였다. 사와무라는 문고리를 쥔 채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손을 들어 손가락을 살랑거리며 눈 아래 점을 씰룩거리는 모양새는 어느 날엔가 목격했던 한 센티넬의 것과 비슷해져 있었다. 그는 눈썹을 조금 움직이다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문을 닫았다. 쾅. 문 닫히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한숨 소리가 들린 듯했다.




 사와무라는 입술을 기어코 손등으로 벅벅 문지르며 복도를 걸었다. 결벽적인 흰 복도를 걷는 그의 옆으로 얼굴을 아는 센티넬과 가이드, 센티넬이거나 가이드거나 혹은 그 무엇도 아닌 의료팀이 분주하게 지나갔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이고 급하고 바쁠 때면 사위가 보이지 않을 법도 했지만 그들은 인사를 까먹지 않았다. 사와무라는 수없이 많은 얼굴들과 인사했다. 말했다. 이름을 말하는 정도였지만 어쩌다 방향이 같은 사람들은 조금 더 길게 말했다. 그래도 짧았다. 가끔 손이 스칠 때도 있었다. 손을 잡아 그를 멈춰세우는 센티넬은 없었다. 그 잠깐의 접촉은 지정된 가이드를 거치기도 전에 마주한 가이드에게 내보이는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세상의 질서를 지탱하는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이 내보이는 일그러진 손짓에 반드시 응답할 필요는 없었다.


 사와무라가 고지받은 회의실에 도착할 즈음에는 입안이 마르고 목이 뻣뻣했다. 벽과 손에 스친 손끝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문 앞에서 사와무라는 헛기침을 두어 번 했고,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다가 손을 매만졌다. 꾹꾹 힘을 주어 주물러 차가워진 손끝이 겨우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졌을 때, 그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따뜻해진 손끝은 다시 차가워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계란말이처럼 아주 샛노란 머리칼이었다. 진한 눈썹과, 아, 남자는 일어났다. 키가 제법 커보였다. 사와무라는 문고리를 쥔 채로 멈춰섰다. 그러자 벌떡 일어났던 남자는 큼지막한 눈을 떼굴떼굴 굴리다 일어날 때와 다르게 아주 천천히 앉았다. 아주 느리고도 느린 몸짓은 몸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좀처럼 빠지지 않는 훈련 때 찍은 스냅샷을 덕지덕지 이어붙여 돌린 것처럼 보였다. 사와무라는 남자가 고통을 즐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아주 느리긴 했지만 결국 의자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고, 사와무라는 그제야 문고리를 쥐고 있던 손을 뒤로 밀어 문을 닫았다. 그리고 테이블로 다가가며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혹시라도 축축하면 곤란했다. 의자에 앉기 전 사와무라는 손을 내보였다.


"사와무라 다이치입니다."

"…테루시마, 유우지."


 …입니다. 사와무라는 마, 하고 성의 마지막 음을 발음할 때 벌어진 입술 사이로 반짝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방금 처음 본 사람의 입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껄끄러워 인중으로, 코로, 미간으로 시선을 천천히 옮겼다. 테루시마는 손을 내밀어 어색하게 그 손을 잡았다. 사와무라는 악수한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맞잡은 두 손은 테이블이라고 부르기도 얄궃은 판자 위로 떨어져 으깨졌다. 두 사람은 손을 응시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손톱 아래에는 흙먼지가 껴있었다. 모양새가 조금 삐뚜름한 손톱은 열 개가 모두 있었다. 거슬한 굳은살. 불에 닿아 오그라든 살갗은 처치를 받지 않은 탓에 붉은 그대로였다. 반지에 눌린 손가락살이 희어 보였다. 사와무라는 손을 바라보며 무슨 능력을 쓰는지 가늠하려했다. 일찍이 받았던 서류에 소상히 써있던 글씨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흐릿하게 보이는 지문의 흔적을 살피고 피부 아래로 있을 혈관들을 상상하고 피부 위로 드러난 힘줄을 살펴보던 그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바로 눈이 마주쳤다. 도쿄(정식 명칭은 K와 T와 숫자가 섞인 것이었지만 모두 도쿄라고 불렀다.)에서 교류차 파견왔던 팀이 떠올랐지만 곧 가라앉았다. 고양이를 연상케하는 그들과 조금 닮긴 했지만 달랐다. 고양이보다는, 그래, 이리 쪽이 어울렸다. 사와무라는 그 큼지막한 눈을 바라보다 반듯하게 웃었다. 깍듯하게까지 느껴지는 미소에 테루시마는 그를 바라보다 시선을 내렸다. 금방 온순해진 눈매는 곧 잘 것처럼 느리게 꿈뻑거렸다.




 테루시마에게 이번 '이동'은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아니, 그는 정정한다: 모든 센티넬에게 '이동'은 반갑지 않은 일상이다. 센티넬의 인권이다 뭐다 하며 급하게 정해진 법으로는 실행 일자로부터 3주 전에 해당 센티넬에게 이동 일자와 이동 목적지를 고지해야 했다. 그러나 생사를 수시로 넘나드는 세상에서 처벌 수단을 상실한 법은 시커먼 글자 덩어리에 불과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생존하기를 원했으며 그 무기로 인간의 태를 한 센티넬을, 무기의 수납장으로 센티넬을 조절할 수 있는 가이드를 손아귀에 쥐었다. 그들이 손에 쥔 것을 놓을 일은 없었고, 없으며, 없을 것이다. 테루시마가 '이동'을 통보받은 것은 당일, 아주 정확하게 따지자면 '이동' 3시간 전이었다. 센터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였고, 온 몸이 불에 그을리는 바람에 산소 호흡기를 입에 대충 꽂고 처치를 받는 중에 웅얼거리는 소리를 주워 들은 것이었다. 눈이 벌게지는 고통에 깨어있지 않았더라면 듣지 못했을 통보였다. 관계자는 이런 저런 얘기를 주워섬겼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흐릿한 시야로 막 떠오르는 태양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는 새삼스럽게 비참했으며 도착한 센터에서 잔뜩 날뛸 생각으로 목구멍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것을 씹어 삼켰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는 가이드를 공격할 수 없었고 문 바로 위에 매달린 카메라를 잠깐 노려볼 수 있었다. 맞잡은 손으로 느껴지는 체온은 따스했고 테루시마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안락함에 취했다. 잠들지 않기 위해 애쓰느라 꺼떡거리는 그의 정수리 위로 미소만큼이나 반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할래요?" 


 의자는 크게 덜커덩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책상으로 처박히려던 정수리는 단숨에 천장을 향했다. 졸음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를 응시하다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할래요?"


 임시 파트너가 된 센티넬은 상태가 안 좋았다. 손을 잡는 것으로 될리가 만무했다. 얼굴에 애티가 나는 센티넬을 바라보며 사와무라는 입맞춤까지 가늠했다. 그리고 혀를 내어 한 번 문질러보는 것으로 입술 상태를 확인했다. 입술은 평소보다 부드러웠다. 정식 파트너가 발라준 립밤 덕이었다. 테루시마는 멍한 시선으로 잠깐 나왔다 들어간 혀를 쫓았다가 테루시마씨? 하고 부르는 입모양에 고개를 흔들었다. 목소리는 제 귀에 들리지 않았다. 머리가 흐트러질 것처럼 고개를 열심히 흔들던 그는 잠시 잡고 있던 손을 떼고 자신의 양 뺨을 찰싹 소리가 나게 때렸다. 하나뿐인 천국은 다시 새하얀 접견실로 변해있었다. 테루시마는 선명해진 시야로 바른 자세로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이드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고작 손을 잡았을 뿐이었다. 고작.


"괜찮아요? 너무 상태가 안 좋은데…. 의료팀 부를게요."

"아니요!"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발에 채인 테이블이 큰 소리를 냈다. 사와무라는 의료팀을 호출하는 버튼에 가져다 댄 손을 내리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테루시마는 제 목소리가 낯설어 입을 뻐끔거렸다. 귀가 울릴렸다. 이정도로 크게, 화내듯이 말하며 멈춰세울 건 아니었는데. 그는 고개를 숙이며 뺨을 붙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양 뺨에는 벌건 손자국이 나있었다. …그리고 그냥, 테루시마라고 부르세요. 유우지도 괜찮아요. 말도 편하게 하세요. 테루시마는 그렇게 중얼거리다 겨우 고개를 들었다. 사와무라는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온화한 얼굴이었다. 임시 이동이기 때문에 자신은 정식 파트너가 아닐 것이었다. 누가 이 가이드의 센티넬일까. 이런 가이드라면 분명 안정적인 센티넬일 것이다. 놀라서 의료팀이 아니라 센티넬을 호출해도 인정됐을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가이드 경력이 꽤 있는 사람이라 놀라지 않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주워섬기며 테루시마는 얼굴을 힐끔힐끔 바라보다 테이블로 시선을 떨궜다. 테이블 아래로 내려가있던 손은 다시 올라와 벌어져 손바닥을 보였다. 그는 벌어져있는 손을 바라봤다. 손가락 끝이,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흔들렸다.


"…손 줘봐."


 이리 같았던 남자는 한결 온순해진 얼굴로 사와무라의 손바닥 위로 양손을 조심스럽게 얹었다. 번질거리던 눈알이 잠잠해지는 것을 지켜보며 사와무라는 웃었다. 긴장한 탓에 떠올리지 못한 정보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테루시마 유우지. 나이는 자신보다 한 살 적다. 센티넬로 발현한 것은 비교적 어렸을 때부터지만 초기에는 힘의 위력에 비해 제어력이 떨어졌고, ……고정적인 가이드 없음. 상성 때문인지 인력 부족 탓인지는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갑작스럽게 이동이 결정된 데는 딱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한계에 다다른 센티넬을 새롭게 벼려 쓰기 위해서.


 테루시마의 손을 잡고 있던 사와무라는 입고 있는 가운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고개를 들었다. 호출이었다. 한 손을 내려 가운 주머니를 뒤적여 호출기를 꺼낸 그는 긴급 호출이라는 빨간 글씨에 한숨을 조금 내쉬었다. 한숨 소리에 한 뼘을 겨우 넘기는 테이블에 이마를 대고 있던 테루시마가 고개를 들었다.


"가야 해요?"

"급하다고 그러네. 가야지, 뭐."

"같이 가면 안돼요?"

"아직 많이 안 좋은가 보네. 키스할까?"


 키스라는 말에 테루시마는 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키스라니. 키스. 꾹 다물린 입술 안쪽의 혀가 움찔했다. 입 천장에, 앞니 바로 뒤에 문질러지는 피어싱이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졌다. 의식하게 되니 모든 게 이상했다. 혀를 평소에 어떻게 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입 안이 혀로만 가득 채워진 것 같아 입을 벌리자 숨을 쉴 때 코로 쉬는지 입으로 쉬는지 아니면 둘 모두를 사용하여 쉬는지마저 헷갈렸다. 사와무라는 그 얼굴을 바라보다 아직도 손자국이 남아있는 뺨을 감싸쥐었다. 키가 별로, 차이가 안 나네.


 사와무라는 얌전히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회의실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방을 떠났다. 테루시마는 멍하니 있다 그의 말대로 자리에 앉아 얌전히 그를 기다렸다. 손을 들어 입술을 만져보지는 못했다. 다만 살짝 눈을 떴을 때 보인 단정한 속눈썹을 떠올렸다. 테이블 아래 있던 무릎이 한참 들썩댔다. 테이블에 쿵 소리가 나게 부딪치고 나서야 두 무릎은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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