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20140620

 

 

 

 

 

 

덕구에게 하는 말

 

 

 

 

 

 에구구, 덕구야. 너 오늘 시장 나가봤니? 왜 그렇게 낑낑거려. 너는 개구멍도 있잖니! 혹시 막혀버렸니? 아해들이 너무 그리로 나가서 그런가. 아니, 그게 말이야. 오늘 좌장 어르신께서 나오셨단 말이다. 심부름 때문에 내 저어 멀리 완산까지 갔다 돌아왔더니 이게 무슨 횡재니. …사실 '어르신'이라고 하기에는 좀 젊어 보였지만, 조금 무서워보이더구나. 눈매가 번뜩번뜩한 것이 정말 귀신들이 무서워서 달아나게 생겼지. 괜히 황궁을 지키시는 분이 아니더구나. 눈만 마주쳐도 적들이 어이쿠야, 하고 달아나게 생겼으니. 금군 좌장군이라니! 괜히 요 앞 동네 아지매들이나 언니들이나 그렇게 좌장 어르신, 좌장 어르신하고 부르는게 아니더구나. 하여튼, 이게 할 말이 아니라. 덕구야. 내 오늘 좀 무서운 일이 있었단다. 무어냐고? 낑낑대지 말고 잘 좀 들으렴!


 아니, 나는 그냥 푸성귀들이 다 떨어졌다길래 요 앞 시장에서 잠깐 사가지고 오려고 했던 참이란다. 아, 쉿. 이거 상궁님들한테 말하면 내 목은 댕겅할텐데! 덕구야, 너가 말하는 강아지여도 입 꼭 다물어다오. 아, 그래서 내가 푸성귀들 가아득 사고 내 먹을 것도 쪼매 사서 갖고 가는데 갑자기 눈 앞이 새카매져가지고 뭘 어찌 할 수가 없었잖냐.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단다. 에고, 우리 서역 손님께서 역성이라도 내시면 어쩌나! 물론, 친절하신 분이셔서 그럴 리는 없지만 말이다. 혹시, 라는 게 있잖니. 뭐, 아이고, 이거 아주 싱싱해서 막 바로 무쳐먹으면 참 맛있을텐데. 에구머니나, 내 설탕과자! …마지막이 제일 컸던 건 비밀이란다, 덕구야. 하여튼 눈 앞이 새카매지고서 어디로 끌려가다가 갑자기 그, 이상한 기분 있잖니. 쎄한 것이 이상했단다. 그러다가 갑자기 뒤에서 으악, 소리가 나더니 막 퍽퍽퍽 소리가 나잖니! 내 너무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았단다. 에고고고, 그러다가 금방 조용해지더구나! 덜덜덜거리면서 어쩌지, 어쩌지, 하고 바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 앞이 쨍 하더구나. 새까만 게 벗겨지자마자 보인 게,


 맞아, 좌장 어르신이었단다.


 처음에는 눈 마주치자마자 무서워서 눈을 꾹 감았는데 갑자기 커다란 게 머리에 툭 얹어지더구나. 그게 뭘까, 해서 눈을 실금 떴는데 그만 눈이 마주치고 말았지. 그 커다란 게 어르신 손이었단다! 어쩜, 나보다 손이 세 마디는 더 클 것 같았는데 어찌나 조심조심하시던지. 한참 어르신 나름대로 다독거리시다가 내게 하는 말이 그거였단다. [익, 숙한 얼굴이구나. 황궁서 일하나 보지?] 에구, 지금 생각하니까 눈물 때문에 눈이 시뻘개져가지고 코 훌쩍 댔을 게 보기 흉했겠구나. 하여튼 훌쩍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좌장 어르신께서 [이 아이 좀 데려다주거라.] 하고 명령하시니 다들 네! 하고 후다닥 날 말에 태워서 데려다주었단다. …처음 봤을 때는 너무 무서웠는데 말이지. 상냥하신 분일지도 모르겠더구나, 덕구야. 그 분이 전쟁에서 벤 적들의 목으로만 탑을 높다랗게 쌓아올릴 수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부드러운 분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물론 궁으로 돌아와서는 상궁님께 혼쭐이 났지만, 그래도, 그래도……다시 한 번 더 뵙고 싶구나. 한 번만,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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