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카츠빅토

#빅토른_전력_60분 1회차 :: 첫 만남

센티넬버스




하나, 그리고 둘, 셋, 천천히 그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세상은 점점 더 차갑게 얼어붙었다. 뒷꿈치부터 그리고 천천히 발가락들까지 온 발바닥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그 사이에 공기 중의, 표면의 수분들이 엉켜 얼음이 되어 굳는 것을 슬로우모션으로 볼 수 있다면 그 광경은 분명 아름다울 것이었다. 세계의, 빙상의 전설, 빅토르 니키포르프. 그가 태어난 땅의 옛 이름을 상기시켜 '러시아'의 영웅이라는 칭호가 붙은 그가 점차 다가오는 것에 카츠키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창백해진 얼굴, 손끝에서도 냉기가 흘러 얼음들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저 손에 내 손도 얼어붙는 것은 아닐까. 카츠키는 쓰고 있던 안경을 조심스럽게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온 몸이 얼려 죽는 가이드라니, 우스울 것도 같았다. 그의 손에 동상을 입은 가이드들이 많다는 것은 잘 알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얼음들처럼 맑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원하고, 바라고 있었다. 뜨거운 눈동자가 그 자신을 옭아맸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카츠키는 초조함에 입술을 조금 깨물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다리에는 이미 감각이 없어진 것 같았다.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부딪칠 거리에서 그는 그의 외투 가슴팍에 달려있는 명찰을 읽어냈는지 입술로 더듬어 이름을 읽었다. 유리, 카, 츠키, 하고 소리 없이 말하는 것에 카츠키는 먼저 다가가 그를 끌어안았다. 최대한 접촉 면적을 넓힐 것. 되도록이면 피부 대 피부로 닿을 것. 부족하거나 혹은 시급할 경우에는 점막 접촉이라도 할 것. 그런 간단한 명제들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끌어안은 그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시려서 이가 부딪칠 것만 같았다. 추워. …너무 추워. 그렇지만 자신은 불 능력자도 아니었고 회복 능력자도 아닌, 그냥 가이드일뿐이었다. 카츠키는 그를 끌어안고 가만히 있었다.

빅토르는 자신을 끌어안은 사람의 정수리를 내려다봤다. 자신보다는 작은 키. 쉬던 가이드인걸까, 살짝 살집이 있어 부드러운 몸이 옷 아래로 느껴졌다. 나이는 몇 살일까. 자신보다 적긴 할 것이었지만 미성년자는 아닌가 긴가민가했다. 유리, 카츠키라면 어느 구역에서 태어나 자란 가이드일까. 언제 가이드로 깨어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갈비뼈 아래에 쪼그라들었던 폐가 점차 공기로 차올라 커졌다가 천천히 내뱉는 숨에 다시 쪼그라드는 것을 상상했다. 고개를 묻자 움찔거리는 가이드에 속으로 웃고 계속해서 느리게 호흡했다. 연구소의 냄새가 나는 듯 했다. 그만의 향기는 그에 묻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기 위해 스쳤던 많은 가이드들의 눈코입없는 얼굴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얼굴이 제대로 기억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번에는 저 얼어버린 마물들과 함께 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이 가이드는 자신을 효과적으로 진정시키고 있었다. 더이상 춥지 않았고 머리가 뜨겁지도 않았으며 손끝으로, 발끝으로 천천히 열기가 퍼지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이, 차분해진다. 천천히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사람. …사람. 빅토르는 그를 끌어안은 제 손끝이 발갛게 혈기가 차올랐을 때 천천히 그에게서 물러났다. 고마워요, 카츠키. 그는 자신과 제대로 눈을 맞추지 못했다. 시선이 갈팡질팡 이리저리 튀었다. 아, 네, 네……. 외투에서 안경을 꺼내 쓰는 것을 보고 빅토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경을 쓰니 조금 더 귀여워보였다. 정말, 아무리 급해도 미성년자는 사절인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방긋 웃으며 물었다. 몇 살인지 물어봐도 될까? 23살입니다. 빅토르 니키포르프씨. 그는 그만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되물었다. 23살? 카츠키는 그가 왜 나이를 묻는지 알 수 없어 재차 23살입니다, 라고 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끄응, 소리를 저도 모르게 내며 고개를 끄덕였고 조심스럽게 손을 건넸다. 능력이야 잠잠했지만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기미가 보이면 손을 떼낼 생각이었다. 빅토르, 니키포르프. 카츠키 유리입니다. 빅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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