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마츠이와

#이와른_전력

21주차 주제 :: 자각



이와이즈미는 눈을 떴다. 그리고 바로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검은색 머리칼에 눈을 깜빡거렸다. 이와이즈미는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와이즈미는 재빠르게 제 자신의 상태를 스캔했다. 몸은 쑤시거나 뻐근한 데 하나 없이 멀쩡했다. 혹시 나 납치라도 당한건가? 묶인 게 있나? 없었다. 혹시 맞은 데라도 있나? 역시 없었다. 그렇지만 고개를 숙여 저가 입은 것을 봤을 때 이와이즈미는 생각이 많아졌다. 저가 입은 티셔츠는 자신이 갖고 있는 옷은 아니었다. 제가 입은 편한 반바지도 제 옷장에는 없는 것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슬쩍 바지를 잡아당겨 입은 속옷을 살폈다. 이것도 저가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입은 옷들이 하나같이 조금씩 넉넉하다 못해 조금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와이즈미는 옷을 맞게 사는 편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어깨선이 제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다거나 하는 상황이 낯설었다. 옷도 다 입고 있고, 뭐 멍든 데도 없고 멀쩡한데 제 옆에서 코까지 가끔씩 곯으면서 잠들어있는 남자는 대체 누구인가? 물론 저 검은색 머리칼을 보자마자 떠오른 인물은 마츠카와 잇세이였다. 물론 저런 검은색 머리야 세상에 널리고 널렸겠지만 저 약간 구불거리는 느낌은 제가 알기론, 마츠카와 잇세이 그뿐이었다. 저렇게까지 거대하고 크다는 느낌은 없었기에 이와이즈미는 난감해했다. 한편 잠들어있던 남자는 잠결에 제 옆을 더듬다가 비어있는 것에 몇 번이고 더 더듬다가 눈을 떴다. …하지메, 어디 갔, 흐아암, 갔어어. 겨우 상체를 일으킨 남자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에 한 번, 그리고 하품을 늘어지게 하는 모습에 두 번 놀란 이와이즈미는 곧 눈이 마주치는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리고 남자 역시 놀랐는지 하품한 그대로 굳어있다가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일어나 이와이즈미에게 다가오는 것에 이와이즈미는 다가오는만큼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뒷통수를 벽에 박고 몸을 웅크렸다. 결국 어깨가 붙잡혔다.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분명 마츠카와 잇세이는 맞았는데, …저렇게 삭은 얼굴이었나? 키도 훨씬 더 큰 것 같았고, 체격이, 가슴이 왜 저렇게, 좀 마른 느낌 아니었나, 으, 시선을 내리던 이와이즈미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대충 손을 뻗어 잡히는 수건을 던졌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봐버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아예 돌아서 벽에다가 머리를 박았다. 쿵, 하고 머리를 박는 모습에 남자는 급하게 수건으로 허리 아래를 감싸고 끌어당겨 안으면서 말렸다. 이와이즈미, 자학은 안 좋아. 왜 그래…가 아니라, 왜 이렇게 작아? 아니, 작다는 말 싫어하는 거 아는데, 왜, 왜 이렇게…. 남자는 눈가를 좁혔다. 마츠카와 맞아? 맞지, 달링. 단박에 제 것을 봤을 때보다 더 복잡해지는 얼굴에 남자는 설마, 하는 얼굴이었다가 등을 돌려섰다. 맙소사.

서로 등을 보인 대치는 한참 이어졌지만 먼저 등을 돌린 것은 (어째서인지 거대한) 마츠카와 쪽이었다. 그 못볼 걸 보여줘서 미안한데, 너, 되게, 나중에는 좋아하게 되거든? 이와이즈미에게 남자의 말소리는 헛소리처럼 들려 그는 제 귀를 막을까 말까 고민했다. 내가 귀를 막는게 빠를까 명치에 주먹을 날리는 게 빠를까를 재며 이와이즈미는 손을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아직은 등을 보인채로 말했다.

"뭐야, 도대체, 이게 무슨……."

"슝 날아온 건가 보지, 뭐. 영 그러면 꿈이라고 생각하고."

이와이즈미는 참 팔자 좋다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제 어깨를 잡고 가볍게 돌려세우는 힘에 어이가 없어졌다. 팔자 좋을 만 하다고 해야하나. 이와이즈미는 제 눈 앞에 보이는 좋은 몸에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냐며 적극적으로 물었을 몸이었지만, 아는지 모르는지도 애매하게 된 남자의 몸이니 난감했다. 뭐라고 불러? 잇세이, 라고 불러주면 좋겠는데, 하지메. 그냥 이와이즈미라고 불러. 정없기는. 마츠카와는 잡았던 어깨를 놓고 손을 잡아 제 가슴에 턱 올렸다. 이, 이게 무슨, 하고 금방에 새빨개지는 얼굴에 마츠카와는 큭큭 웃었다. 그리고 얹은 손 위로 제 손을 겹치고 힘을 줘 가슴을 주물럭댔다. 이, 이거 성희롱이야, 마츠카와! 성희롱이라기보다는 성추행이겠지, 이와이즈미. 응? 이와이즈미는 재빠르게 손을 아래로 내리며 주먹을 꼭 쥐었고 다시 뒤로 물러섰다. 좀 심하게 놀렸나. 얼굴을 넘어서 귀, 목덜미까지 새뻘겋게 달아오른 것이 좀만 있으면 몸이 빨개질 것 같았다. 이런, 마츠카와는 뒷걸음질을 조금 쳤다가 옷가지들을 들고 방을 빠져나갔다. 이와이즈미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저, 마츠카와의 얼굴을 한 파렴치한이 제게 뭔 짓을 했는지. 이와이즈미는 가리는 걸로 모자랐는지 손으로 얼굴을 꾹 누르고 한참 있었다. 당혹스러운 것과 별개로 온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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