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우시이와

겨울밤




  삑, …삑, …삐빅, ……삑, 삐빅. 삑, 삑, …삑, 삐빅, 삑. 우시지마는 현관에 서서 반복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저것으로 네 번째였다. 한 번만 더 틀리면 3분을 기다려야 했다. 열까 말까 고민했지만 보통 때의 그는 자신이 먼저 문을 열어주는 것보다는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반겨주는 것을 좀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미묘하게 다른 표정을 보며 물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우시지마는 묻지 않았다. 삐빅, 삐, 삐. 기어코 문 너머에 있는 취객은 다섯 번째로 비밀번호를 틀렸고, 도어락은 길지 않은 경고음을 냈다. 아이씨, 하고 신경질을 내는 소리에 그는 입가를 꾹 눌러 웃음기를 죽였다. 3분을 다 기다릴 생각인지 서성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전화만 걸면 열어줄 수 있는 것을. 그는 고개를 조금 들어 시계를 봤다. 물론 평소라면 잠들었을 시간이긴 했다. 언제나 규칙적으로 깨어나고 잠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모든 당연한 일상의 예외가 그인 것처럼 오늘, 지금 이 시간까지 깨어있는 것 또한 그 예외의 연장선이었다. 우시지마는 고개를 숙이고 팔짱을 낀 채로 3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팔에 얹은 손으로 팔뚝을 툭툭 건드리던 그는 갑자기 멀어져가는 발소리에 고개를 퍼뜩 들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그는 문을 벌컥 열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문을 잡고 있는 채로 엘리베이터 쪽을 바라보자, 엘리베이터는 한참 위층에 멈춰 서있었고, 버튼조차 눌려있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계단 쪽으로 고개를 팩 돌렸다. 흐릿한 불빛이 들었다 꺼졌다. 이런. 외투를 챙겨입을 생각도 못하고 뛰쳐나가는 그의 뒤로 문이 닫히고, 켜졌던 불이 다시 꺼졌다.


 그를 발견한 것은 한참 떨어져 있는 공원 벤치에서였다. 추울 법도 했는데 떨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에 우시지마는 우뚝 섰다가 급하게 다가갔다. 한참 뛰어다닌 탓에 땀에 조금 젖어버린 몸은 허연 김이 날 것 같았다. 그는 다가가 앉아있는 그의 발치에 반쯤 무릎을 꿇으며 시선을 맞췄다.


"이와이즈미."


 그 부름에 건드리면 머리가 뚝 떨어질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술기운에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얼굴이 보였다. 약간 멍하니 풀려있던 눈에 빛이 들며 또렷해져 안심하던 우시지마는 곧 눈물을 뚝뚝 흘리는 얼굴과 마주했다. 제 무릎과 그의 무릎에 하나씩 얹어둔 손에 힘이 자꾸만 들어가는 바람에 그는 어금니를 조금 깨물며 고개를 숙여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니, 울고 있는 얼굴이 익숙하지가 않아 당황스러운 탓이었다. 알고 사귀게 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저 얼굴에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다지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았지만. 우시지마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왜, 왜 우는 거지? 이와이즈미."

"문, 왜 안, 열어줘…. 이제 나, 보기 싫은 거, 흡, 으, 윽."


 이와이즈미의 말에 그는 고개를 팩 소리가 나게 들며 눈을 홉떴다. 그가 집에 돌아오는 걸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렸는데 보기 싫은 거냐는 말이나 들어야 한다니. 우시지마는 뺨을 벅벅 닦아내는 손을 낚아채어 쥐었다. 제 손에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들어오는 작은 손이 사랑스러웠다. 콧등에 주름이 생기도록 찡그리고서 울먹거리는 얼굴도 당연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올려다보기 위해 낮췄던 몸을 일으켜 그를 꽉 안았다. 차갑게 닿는 몸에 우시지마는 여느 때처럼 걸치고 있는 것을 벗어주려다 벗어줄 만한 외투 자체를 아예 입고 나오질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걸치고 있는 것은 고작 실내에서 입고 있는 지퍼 달린 후리스였다. 그 안은 편한 후드티였고, 아래는 그냥, 평범한 바지였고, 하. 짧은 한숨이 혀끝에 매달렸다가 입술이 벌어진 사이에 박차고 튀어나왔다. 신발은 짝짝이였다. 이러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사방을 뛰어다니면서 그를 찾아다녔다니. 우시지마가 제 차림새에 황당해하는 찰나, 품에 안겨 눈물과 콧물이 스웨터에 묻는 줄도 모르고 서러움을 쏟아내던 정수리가 어깨와 동시에 위로 튀었다. 우시지마도 덩달아 놀라 고개를 기울였다. 이와이즈미?


"내가, 내가 우는 것, 도 싫어?"


 우시지마는 혀를 찰 뻔한 것을 꾹 참았다. 그리고 벤치 끄트머리에 간신히 걸쳐 앉아 얼굴을 마주 봤다. 바로 대답을 하지 않자 싫다는 의미로 멋대로 알아들은 것인지 꾹 다물린 입술 아래로 굳어진 턱에 호두가 영글어갔다. 아주 단단한 것이 부서지기는커녕, 끄떡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그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주변을 휙휙 둘러봤다. 그리고 그의 뺨을 부러 양손으로 감싸 쥐고는 입술을 붙였다. 그러자 망치로 두들겨대도 부서질 것 같지 않았던 호두는 어디로 갔는지, 마트에서 함께 골랐던 딸기 같은 얼굴만이 손바닥 안에 남아있었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럴 리가. 언제 오나,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우는 건, …좋아하진 않지. 행복하게 웃는 쪽이 더 좋으니까."


 물론 침대에서라면 어느 쪽이든 좋지만. 그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뜯어내어 쏙 숨겨내고 달콤한 말만을 귓가에 속삭였다. 굳어진 턱이 풀렸지만 좀처럼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입꼬리에 힘이 빠져 스르르 풀어지는 것을 보며 우시지마는 안도했다. 크응. 코를 먹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이 울렸다. 벌건 낯을 한 이와이즈미는 손바닥 사이에 볼이 눌린 채로 몇 번이고 흐응, 킁, 흠, 크, 하고 요상한 소리를 내며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어깨를 움찔거리고 목 안쪽을 울리다 말았다.


"콧물 나…."


 흐릿한 목소리에 그는 온 주머니라는 주머니에 다 손을 집어넣었다 뺐다. 휴대전화라든지 동전, …콘돔은 그의 눈에 보이자마자 도로 쑤셔 넣었다. 다행히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손수건을 꺼내어 코에 대주었다. 흥. 이와이즈미는 눈을 꾹 감고 그대로 코를 풀었다. 문득 저 손수건이 운동할 때 땀을 닦았던 것이라는 생각이 나 우시지마는 후회했다. 차라리 손에 대고 풀게 하는 것이 나았을 텐데. 코를 풀고 먼저 얼굴을 움직여 눈물도 닦은 이와이즈미는 울고 난 뒤 말개진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춥다."

"돌아가자, 하지메."

"그래…."


 그 사이 술에 깬 것인지 몽롱했던 기색은 많이 가셔 보였다. 우시지마는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챙겼고, 손을 제대로 마주 잡았다. 그러자 손가락이 조금 꼬물거렸다. 힘을 빼자 손안에서 손바닥이 마주 비벼졌고, 손가락 사이사이로 손가락이 끼워졌다. 교차했다. 공원에서 집으로 천천히 걸어온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춰섰다. 오른쪽에 서있는 이와이즈미가 버튼을 꾹 눌렀다. 잠시 머리 위로 켜졌던 등이 꺼지고 버튼에서 나는 뻘건 빛만이 복도에 남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이와이즈미 쪽이었다.


"미안해. 기다리고 있었, 어?"

"기다리고 있었어."

"으……."


 어둠 속에서 이와이즈미는 얼굴을 찡그렸다. 잠깐, 지금 몇 시지? 그는 잡지 않은 손을 들어 주머니 겉을 툭툭 쳤다가 손을 내렸다. 평소의 그는 잠들어 있을 시간이라는 건 그 스스로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가게에서 나설 때 고개를 돌려 확인했던 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떠올렸다. 한숨이 나왔다. 그러자맞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하. 그는 짧게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어깨에 기대었다. …굳이 주머니를 뒤져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이 어둠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한참 높은 곳에 맺혀있던 엘리베이터가 죽죽 떨어져 그들 바로 앞에까지 내려올 때까지, 이와이즈미는 닿은 어깨와 손끝을 느끼며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금방 도착했고, 매끈한 문은 벌어져 두 사람을 맞이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문 앞에 도착하자 이와이즈미는 도어락에 대고 헛손질하던 것을 떠올리고 얼굴을 붉혔다. 자신이 손을 들기도 전에 먼저 손을 뻗어 차분히 숫자들을 눌러가는 손가락에 시선을 두었다. 긴 숫자들은 그의 생일과 자신의 생일을 붙여둔 것에 불과했다. 저걸 다섯 번이나 틀려서, 내가…. 영롱한 소리와 잠금이 풀리며 나는 진동을 손끝으로 느끼며 그는 문손잡이를 꾹 잡아내렸다. 열리는 문 틈새로 따뜻한 집 공기가, 그의 몸에서 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향기가 훅 끼치는 것을 느꼈다. 집이다. 이와이즈미는 딱딱하게 굳어있던 등허리가 부드러워지다 못해 구멍난 풍선처럼 순식간에 힘이 빠지고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발 구석구석까지 흐물흐물해졌다. 하아아. 절로 나오는 숨이 긴 데다 보통 깊은 게 아니었다. 명치 아래에 뭉쳐있던 의문 모를 긴장까지 단 숨에 뽑아내어 토해낸 그는 바로 소파로 가 털썩 앉았다. 그런 그를 가볍게 일으켜 세우고 침실로 데려간 것은 우시지마였다. 우시지마는 그를 반쯤 안아든 채로 침실로 가 침대에 그를 눕혔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자야지."

"씻, 어야 하는데, 나 냄새…."

"내일 일어나서."


 우시지마는 베개에 파묻혀 작아진 웅얼거림도 놓치지 않았다. 머리를 가볍게 만지다 차례차례 양말 하나 남기지 않고 옷을 모조리 벗긴 다음, 혹하기 전에 이불로 둘둘 감았다. 부드러운 이불에 파묻힌 그에게서 으으, 하는 긴 신음소리가 났다. 그는 조금 웃었다. 숨이 답답할까 끄트머리를 잡아내려 얼굴만 쏙 나오게 만든 그는 이윽고 입술을 붙였다. 쪽 소리가 났다.


"…내일 일어나서. 이와이즈미."

"으응."


 대답은 이미 닥쳐온 잠기운에 뭉개져 흐물거렸다. 우시지마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도로 이불을 위로 끌어올려 얼굴을 반쯤 가렸다. 머리가 닿을 자리에 베개를 받쳐주자 곧 이불 뭉치에서는 쌕쌕거리는 숨소리만 남았다. 우시지마는 아주 작게, 작게 움직이는 이불을 바라보았다. 토하지 않은 거로 감사히 여겨야 하나. 이불 채로 끌어안은 그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감기에 걸리면 그가 걱정을 한참 할 테니 잠옷으로 갈아입고 이불도 덮은 다음이었다. 잠은 금방 찾아와 제 온몸을 쏘다니더니 무엇보다도 무거운 무게로 양 눈꺼풀을 지그시 눌렀다. 우시지마는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잠들었다.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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