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20140604

 

 

 

 

 

 

 J. 당신이 나를 부르는데 왜 내 이름이 아닌지 궁금해졌다. J. 당신은 재차 나를 불렀다. 당신 목소리는 손가락이 되어 심장 아래를 살살 긁어내리는 것 같았다. 왜. 나는 애써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며 빨대를 집어 휘저었다. 달그락, 달그락. 얼음들은 빨대가 휘젓는 대로 흔들렸다. 얼음이 투명한 유리잔을 부유하며 부딪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상큼한 레몬 향기와 다르게 얼음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것은 새파란 색이었다. 이가 시릴 것만 같은, 파란색. 입술을 양 옆으로 당겨 웃으면 이빨 사이로 그 파란색이 구석구석까지 끼어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입꼬리를 무너뜨렸다. 왜 그런 얼굴이야. 우리가 얼마 만에 만나는 건데. 나는 그 말에 입꼬리를 당겼다. 어색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겨우 생각해냈다. K. 그래, K라고 하자.

 저녁과 밤의 경계선이었다. 그는 허리를 잔뜩 구부려 숙이며 뺨을 테이블에 가져다 댔다. 낮 동안 쏟아진 햇빛을 고스란히 머금은 테이블은 따뜻했다. 아침에 온 빗방울이 말라붙은 창문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산등성이 너머 하늘은 너무나도 붉어 보였다. 눈부셨다. 남자는 눈을 감았다. 눈앞으로는 오로지 어둠. 짙은, 새카만 어둠뿐이었지만, 그는 얇은 눈꺼풀 위로 붉은 햇빛이 드리우는 것을 느꼈다. 햇빛은 그의 눈꺼풀 위를, 주근깨가 빼곡하게 뿌려진 콧등과 뺨 언저리를,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는 따뜻한 기운을 얼굴로, 온 몸으로 받으며 가만히 있었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것은 머리칼을 쓰다듬는 차갑고, 딱딱한 손길을 느꼈을 때였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떠 제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사람을 바라봤다. 남자의 머리 위에서 환하게 비추는 조명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상관은 없었다. 그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가 눈꼬리를 휘어 웃었다. 어서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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