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우시이와

#이와른_전력

28주차 : 착각






 우리는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우정을, 컨트롤 키와 F키를 동시에 눌러 모든 우정이라는 단어를 찾은 다음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 넣고 바꾸기로 바꾼 것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기로 했다. 애초에 우리의 시작은 우정이라고 하기에도 미약한 관계였다. 라이벌이었고 너는 손꼽히는 스파이커이고 에이스이고 주장이었다. 셋을 손으로 꼽아보자면 관동의 사쿠사와 큐슈의 키류, 이렇게 두 선수들과 네가 꼽혔다. 너는 대단한 스파이커였다. 지난 고등학교 시절, 그 동안 나는 코트 위에서 너와 맞부딪쳤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싸웠다. 오이카와와 함께. 여섯 명이서 강한 것이 강한 것이라는 나의 말을 증명하고 싶어서였다. 승리를 거머쥐고 싶어서였다. 나는 배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배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짜증나기는 하지만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아는 최고의 세터와 에이스로 코트에 서있고 싶었다. 이는 즉,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직설적이고 아주 솔직한 말에 속이 벅벅 긁혀서 소꿉친구와 함께 끓어오르곤 했으니까. …아니, 우리는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생각하려고 했다. 난,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너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은 세뇌시키고 최면을 거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절박해졌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고, 너를 좋아하는 것은 친구로일 뿐이었고, 그동안의 관계를 이어온 것은 네, 네,



 …네게 뭐라고 말해야 보다 그럴 듯 할까. 나는 생각이 닿은 마지막 문장에서 숨을 멈췄다.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아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 손바닥 아래서 무슨 표정인지도 잘 모르겠는 얼굴로 가쁘게 숨을 쉬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숨이 가빴다. 벅찼다. 머리 끝까지 물이, 아니 수은이 차올라서 뻐끔거리는 것 같았다. 뚫려있는 온갖 구멍으로 수은이 밀려들어온다. 나는 네게 이별을 고할 것이다. 사랑은 시작한 적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네게 오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냥 툭 하면 떨어져나갈 흙먼지여야 했다. 너는 언제나 신중하고 진중하게 나의 말을 들었다. 나의 말은 네게 충분히 납득이 될 정도로 단단해야했다. 그동안의 증거라고 나도는 것들을 모조리 부정하고 치를 떨 정도로 나를, 나를 증오했으면 했다. 그리고 깔끔하게 잊었으면 했다. 아니야. 제 말들에 얇게 저며지는 듯한 가슴을 끌어안았다.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고 하자. 너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고 하자. 너와 데이트라는 것을 해본 것도, 손을 잡은 것도, 네 부축을 받았던 것도, 술에 잔뜩 취해서 꼬인 혀로 서투르게 속마음을 털어놨던 시간들도, 고백을 들었던 시간도, 고백을 했던 시간도, 함께 있어 행복했던 시간도, 모두, 전부, 나의 착각이었고 너의 착각이었다고 하자. 그러면 모두가 납득해줄 것이었다. 네 추락을 바라는 모든 이들이 멍청하다고 어리석다고 욕을 할 지언정 네 발목을 붙잡지 않을 것이었다. 너는, 그냥,


"착각했던 거지. 좋아한 거라고. 매달리니까 기분 좋아서 좀 들어준 거지, 사랑한 건 아니었어. 착각이었다고."

"거짓말 하지 마라."


 네 말에 나는 조금 웃었다. 너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지만 다른 이들은 받아들이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너는 끝내 이 거짓말을 수긍해야할 것이었다. 너도 배구를 좋아하니까. 코트에서 누구보다 반짝이는 시간을 사랑할 거니까. 배구에 대한 밀도 깊은 애정이 너를 지킬 것이었다. 믿어야할 것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스스로의 착각을.



'write > HQ'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이와  (0) 2017.07.25
☆★☆★19금★☆★☆  (0) 2017.05.19
마츠이와  (0) 2017.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