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쿠니이와

#이와른_전력

15회차 주제 : 동거



이와이즈미씨, 뭐하고 있어요? 느즈막한 아침, 점심이라고 불러도 될 시간에 문이 열리고 살짝 헝클어지고 뻗친 머리로 나오는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개던 빨래를 내려놓고 웃었다. 저런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이제는 종종 보는 모습이었다. 조금 늘어지거나 색이 변한듯한 티셔츠도 어정쩡한 바지도 푹신해보이는 슬리퍼에 폭 찔러넣은 큰 발도 잠이 아직까지도 달아나지 않은 눈덩이도. 휘적휘적 걸어오다가 저가 앉아있던 소파에 풀썩 소리가 나도록 앉았다가 바로 옆으로 눕는 것에 이와이즈미는 머리를 손빗으로 대충 정리해주고 눈가를 만졌다. 늦잠이네. 많이 피곤했어? 달래는 말투로 제 뺨을 만지고 눈가를 만지다가 살짝 입을 맞추는 것에 쿠니미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리다가 조금 잠이 달아났는지 맑은 눈이 되어 이와이즈미를 바라봤다. 그러다 비적거리며 일어나 어깨에 기대었다. 키는 쿠니미가 더 컸기에 조금 삐뚤어진 자세였지만 이와이즈미는 자세에 대해 뭐라 말하지 않았다. 대신에 햇빛에 바짝 마른 수건을 차곡차곡 다시 접기 시작했다. 곱게 갠 수건에 코를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 햇빛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이와이즈미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햇빛 아래에 뽀송하게 마른 이불을 같이 덮고 그 풀어진 얼굴을 보자면 자신도 기분이 곧잘 좋아졌다. 빨래는 거의 다 개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이즈미는 마른 빨랫감으로 뻗어오는 그의 손을 그대로 무릎에 얹게 했다.

무릎에 양 손을 얹고 있는 모습이 조금 예전을 떠올리게 했다. 그 때는 머리가 조금 더 길었던 것 같은데, 키는 좀 더 작고 몸도 여리여리한 느낌이 났지. 그런 생각을 하며 마른 빨래들을 빠르게 척척 갠 이와이즈미는 반절을 나누어 그 쪽으로 밀었다. 이만큼은 알아서 갔다놔. 네. 잠은 다 깼고? …응. 대답이 조금 느렸다. 더 자고 싶은 걸까. 이와이즈미는 뺨을 쓰다듬고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어서 하고 와. 점심은 같이 먹고 싶으니까. 다정한 목소리에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사실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아서 집안일을 잘 나눴고 척척 했다. 자신이 아팠던 때에나 히트사이클이 왔을 때에는 요리부터 설거지에 청소, 빨래까지 다 하기도 했지만 쿠니미는 평소보다 늦은, 저녁과 밤의 사이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었다. 약간의 술냄새, 파르스름해진 턱, 아침에 나설 때와는 다르게 풀어진 옷차림에 이와이즈미는 웃었다. 다녀왔어? 하고 끌어안고 체취를 맡고 느릿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녀왔다는 대답을 듣고 물을 마시고 씻고 잠들었다. 술자리였으니 꽤 많이 먹고 마신다고 해도 양이 많은 편이 아니니 슬슬 배고프긴 할 것이었다. 이와이즈미도 그의 뒤를 따라 정리한 것들을 들고 일어났고 욕실을 채우고 옷장에 있는 장을 채웠다. …다림질도 벌써 다 했어요? 내가 하려고 했는데. 워낙 곤하게 자야지. 이와이즈미는 웃고 점심은 요리해주겠냐고 물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은 아주 간단하게 요리해 먹었다. 진한 토마토 소스가 맛이 좋아 이와이즈미는 마트에서 다른 브랜드 걸 사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통통한 파스타를 먹으며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 아니, 하지메는 좀, 도전할 필요가 있어요. 아, 이와이즈미씨, 음. 이리저리 호칭이 튀는 것을 들으며 이와이즈미는 웃었다. 그래, 아키라. 하고 말하고는 샐러드를 한 볼 가득 해치우는 것을 바라보며 그 왕성하던 식욕은 어디에 안가는 구나 싶었다. 간단한 내기를 건 팔씨름 경기도 금방 달아오르곤 했다. 그에게는 분명 승부욕을 들끓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했고 뻔질나게 도전을 하던 하나마키나 쿄타니를 떠올린 쿠니미는 곧 작게 웃었다. 무슨 생각해? 고등학교 때 생각했어요. 배구? 아뇨, 팔씨름. 그러고보니까 아키라는 나랑 팔씨름을 별로 안 했었네. 학년 상관없이 엄청 달려들었는데 말이지. 호탕한 웃음에 그는 살짝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그를 바라봤다. 한 번은 했잖아요. 그렇지, 고백했을 때. 담담한 목소리에 쿠니미는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그 순간을 떠올리자면 제 어리숙함과 어설픔에 부끄러워지곤 했지만 이와이즈미는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을 좋아했다. 조금 놀리듯이 말할 때도 있지만 보통 그 순간을 생각할 때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창문 밖이나 어딘가를 응시하며 턱을 괴고는 했다. 내가 말했던가? 쿠니미는 그를 바라봤다. 나는 너가 그렇게, 냉정하지 않을 때면 평소답지 않은 것 같아서 귀여워. 좋고. 내가 부모님 다음으로 많이 보지 않았을까. 흐릿하게 말하면서 웃는 얼굴에 쿠니미는 부모님보다도 많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토마토 소스가 묻은 줄도 모르고 움직이는 뺨을 가볍게 핥고 입술에 입을 맞췄다. 어서 먹어요.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샐러드를 곁들인 파스타는 꽤 많은 양일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은 금방 해치웠다. 설거지는 하지 않더라도 그릇을 담가두려 일어나는 모습을 보다 쿠니미도 뒤이어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싱크대에 그릇을 내려놓고 훤히 보이는 목덜미에 조금 이를 세웠다. 분명 자국이 깊게 남아있지만 그 위에 몇 번이고 이를 세우고 깨물고 자국을 새로 남기고 싶었다. 아키라.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 목소리가 좋았다. 허구한 날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던, 남자답지만 어딘가 귀여운 얼굴도 자신보다 조금 작은 키도 단단한 몸도 자신보다 작은 손과 발도 몸에 남은 상처도 흉터도 자신이 자국을 남기면 꽤 오래 가는 연약한 피부도. 그의 모든 것이 쿠니미는 좋았다. 사랑했다. 입술은 떨어졌지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 느껴져 이와이즈미는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돌렸다. 설거지 하고 와. 주말이니까….

아. 쿠니미는 제 어깨를 만지는 손을 타고 부드러운 페로몬이 닿는 것을 느꼈다. 제게는 한없이 달콤한 그 향기에 쿠니미는 입을 조금 벌리고 있다가 꼭 다물었다. 알겠어요. 커피 마실 거예요? 그냥 물이나 마시려고. 낮잠도 자고 싶어서. 방금 일어났는데. 지칠 것 같아서.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는 것에 조금 찌그러졌다가 본래 모양으로 돌아오는 자국을 바라보며 쿠니미는 고무장갑을 끼고 물을 틀었다. 설거지를 하는 손길이 조금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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