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151104

 

 

 

 

 가을이라는 계절의 존재가 무색하게 겨울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된지는 꽤 되었다. 여름에서 짧은 가을, 그리고 겨울로 지나가는 동안에 머리는 꽤 자랐고 다달이 정리를 하기 그의 머리는 반절만 염색을 한냥 독특한 모양새였다. 그 모습을 보던 크리스토퍼는 통 머리 관리는 못하는 남자라며 고개를 저었고, 이윽고 미용실을 예약했었다. 미용실에서 새롭게 머리를 하고 나왔을 때 훅 부는 바람에 나란히 어깨를 떨었다. 날이 꽤 추워졌네요. 부쩍 추워진 날씨에 제임스는 지나가는 길에 가게에 들려 따뜻한 목도리와 장갑을 함께 샀다. 목도리는 아주 길지 않아서 둘이 나눠 두르기에는 조금 짧았지만 그를 핑계로 두 남자는 친밀하게 팔짱을 끼고서 집으로 향했다.

 길다고 하기에는 짧지만 짧지 않은 시간동안에는 여러 일들이 있었다: 제임스에게 음악을 배우는 학생들은 제임스가 전문적으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펑크난 연주자 자리를 메꾸기 위해 참여하게 된 학교 오케스트라 동아리 연주회에서 알게 되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음악 교과를 배우는 학생들 중 절반은 안 되는 수였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소문은 말처럼 빨랐다. 반짝거리는 아이들 앞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중간고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아이들은 한숨을 쉬었다. 깐깐한 선생님이구나. 하지만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바흐를'Vahh'라고 쓰는 애들은 처음이라며 수업 방향을 바꿔야할지 한참 고민을 했다. 옷장에서는 코트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크리스토퍼는 코트와 다른 옷들을 매치시키는 것을 고심했다. 그렇게 옷 입는 것까지 챙겨줄 필요는 없다며 제임스는 웃었지만, 크리스토퍼는 정장을 덜 입으니 그런 재미가 덜해졌다며 니트에 받쳐입을 셔츠를 골랐다. 제임스는 크리스토퍼의 전시회가 언제쯤 열릴지 궁금해했지만 그는 알려주지 않을 생각인지 아니면 한참 멀은 것인지 말을 잘 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의 스튜디오로 도시락을 나르는 것은 제법 일상이 되었고, 크리스토퍼와 그의 스태프들이 도시락을 받고 기뻐하는 것에 잔뜩 고무되어 다음 번의 도시락을 미리 고안하기도 하는 제임스였지만, 그의 일터에서 만나는 자존심 높은 모델들은, 그 중 한 남자 모델은 특히 더, 자신을 위축시키는 것 같다며 괜히 심통을 내기도 했다. 그의 동생 크리스토퍼(그러니까, 크리스토퍼 윈스턴)는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오겠다며 영국을 떠나 호주로 가서 몇 주 뒤에 제임스에게 엽서를 보내왔고 제임스는 조금 더 넓은 세상이면 호주보다는 동양 쪽을 가는 편이지 않냐며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엽서의 그림을 보고 여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웃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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