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하나이와

리퀘스트 박스 :: 하나이와 :: 첫데이트/꽃

오늘의 꽃





부끄럽게도, 하나마키는 잠을 설쳤다. 거울 앞에서 눈 아래를 주욱 손가락으로 밀어내리며 눈이 충혈되지는 않았는지 살폈다. 그정도는 아닌 듯 했다. 다행이었다. 내가 오늘을 위해서 오이카와를 포함한 친구들의 추천 중에서 고르고 골라 데이트 코스를 짜고, 옷도 골라 놓고, 신발까지 맞춰서, 팩도 하고, 푹 자기까지만 하면 완벽했을텐데. 사실 그와의 데이트를 앞두고 푹 자는 것이 무리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데이트 하자고 말을 꺼내는 것에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몇 번이고 심호흡을 했었다. 그렇지만 그 긴장감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와이즈미에 사르르 녹아버렸었다. 아, 어떡하지. 진짜, 너무, 귀엽고, 아. 하나마키는 그때를 떠올리며 허공에 마구 주먹질을 했다. 그 얼굴을 떠올리니 다시 긴장이 되어 하나마키는 주먹질을 멈추고 꾹 주먹을 아래로 움켜쥐었다. 완벽하게, 데이트를 할 거야! 굳은 다짐을 한 하나마키는 시계를 보고 후다닥 화장실로 들어갔다. 슬리퍼가 칠레팔레 널부러져 화장실 입구 앞을 굴렀다.

잔뜩 부산스럽게 준비를 한 다음 전신 거울에 몸을 이리저리 비추었다. 머리는 넘길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넘기지 않았는데 역시 넘기는 편이 좋았을까. 코트로 괜찮은가? 그렇지만 패딩은 싫은걸. 니트, 괜찮은걸까. 그렇지만 목폴라는 좀 답답해보이지 않을까. 으으음. 바지야 마음에 들지만. 양말, 하나마키는 고개를 숙이고 발가락을 괜히 꼼지락거렸다. 깔끔한 색깔에 포인트로 귀여운 하트무늬가 총총총 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그의 얼굴에 헤실헤실 웃었다. 아, 빨리, 보고 싶다. 몇 시지. 음, 출발해서, 들려서, …괜찮겠다! 하나마키는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 데이트 코스를 머리속으로 떠올리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발을 신고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버스를 탔다.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노래를 듣고 있을 때 옆자리에 느껴지는 기척에 하나마키는 고개를 돌렸다. 잠시 멈췄던 버스가 다시 움직였고 옆에 앉은 것은 말간 얼굴을 하고 있는 이와이즈미였다. 너, 가 왜…? 하고 멍청하게 말을 내뱉었을 때 이와이즈미는 웃었다. 뭐야, 너 왜 이렇게 빨리 나왔어. 이와이즈미는 웃으며 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하나마키의 머릿속은 불꽃놀이가 마구 터지고 있었다. 먼저 가서 기다리다가 다가오는 이와이즈미를 먼저 눈치채고 인사하려고 했는데? 오래 기다렸냐고 하면 방금 왔다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혹시라도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은근슬쩍 얼굴도 만지고, 하나마키는 입술을 저도 모르게 깨물었다, 아직 바람은 쌀쌀한데 오래 기다렸냐고 물을 거였는데. 그리고 다음부터 먼저 나왔거나 아니면 내가 늦으면 가까운데 들어가 있으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점심은 언제 먹었냐고 물어서 카페로 가서 간단하게 먹거나 아니면 걸어서 전시회를 가려고 했는데. 고질라 전시회란 말이야. 고질라 인형 사주려고 했는데, 물론 이미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야, 하나마키. 하고 운을 떼는 것에 하나마키는 응? 하고 소리를 내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드러난 이마가 가지런했다. 아, 뽀뽀하고 싶어. 뽀뽀. 아니, 손 잡고 싶어.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아니, 그, 너 멋지다. 뭐가 민망한지 턱 아래까지 오는 하얀 목폴라 니트를 입고서 고개를 숙여 살짝 입술을 숨기는 이와이즈미의 행동에 하나마키는 입을 조금 멍하니 벌렸다. 불꽃놀이가 펑펑 터지고 있는 머릿속에 휘발유를 콸콸 부었다. 아, 하얀 목폴라, 아, 너무 잘 어울려. 솔직히 오이카와나 입을 것 같은 스타일이긴 한데, 이와이즈미는 코트를 입고 있었고, 목폴라에, 단정한 바지를 입고, 러닝 때 신는 운동화가 아닌 다른 스타일의 단정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아냐, 저건 운동화가 아니야. 너무, 잘 어울려! 하나마키는 마음 속으로 도쿄 아파트 한 채를 뽑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겨우 말할 수 있었다. 너, 도……. 묘한 적막이 흐르고 다만 안내 방송으로 내릴 정류장을 알리는 단정한 목소리가 들려 하나마키는 이제 내려야겠다는 말을 겨우 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뭔가 예상치못한 만남에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버스에서 내려 뺨에 닿는 바람이 차가워 어깨를 조금 움찔했지만 머리가 차분해져서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이와이즈미, 점심 언제 먹었어? 아, 12시 전에 먹었어. 오이카와가 좀 귀찮게 굴어야지. 푸흐흐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 이와이즈미는 곧 그의 얼굴을 보고 카페 들릴래? 하고 물었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차, 하고 손뼉을 가볍게 쳤다. 둔탁하지 않은 그 소리에 이와이즈미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반짝거리는 눈동자에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점심을 먹으며 주절거리던 것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어려웠다.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듣는지, 무엇을 만지는지에 온 신경이 쏠리는 것만 같았다. 그건, 너 같은 능숙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쿠소. 곧 입이 열렸다. 있잖아, 이와이즈미. 먼저, 어, 카페에 자리잡고 있을래? 미안. 방금 전에 손뼉을 쳤던 손을 맞대고 제게 미안해하는 것에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흘끗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확실히 많이 이른 시각이었다. 만나기 전에 들릴 곳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마시고 싶어? 하고 묻자 하나마키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내가 낼래. 그래도 될까? 그러니까, 첫, 데이트니까. 쑥스러워하며 살짝 고개를 돌렸다가도 시선을 맞춰오는 눈에 이와이즈미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마키는 고맙다며 금방 다녀오겠다는 말을 했다. 응. 다녀와.

카페의 음악은 잔잔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너무 멍청하게 굴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하나마키의 앞에서는 마음이 어수선해지고 마는 것을 알았다. 좀, 심하게 두근거린다고. 음료를 시켰더라면 꽂힌 빨대가 잔뜩 깨물어서 우글거렸을 것이었다.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시선이 문가로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입은 니트는 너무 잘 어울렸다. 안에 받쳐 입은 셔츠 무늬는 또 왜 그렇게 귀여운 것인지. 맨날 서로 져지나 교복을 입은 모습만 보다가 데이트라고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아, 진짜 데이트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와이즈미는 곧 딸랑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한쪽 팔을 등 뒤로 숨긴 것에 뭔가 주려고 그렇게 갔다온 것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같이 가서 사도 되는데.


이와이즈미!

물론 그가 곧 숨긴 것을 내밀었을 때 그 생각은 싹 사라졌다. 물기를 머금은 빨간 장미. 한 송이의 장미. 그 장미를 보자마자 얼굴이 그 고운 색으로 물들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 그, 너무 그런가? 그렇지만 주고 싶었어. 만나서 건네주고 싶었는데, 버스에서, 그렇게 만나 버려서…. …이와이즈미? 제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에 이와이즈미는 겨우 그 장미를 받았다. 고, 맙다. 고마워, 하나마키…. 심장박동 소리가 요란해서 바깥으로 들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빈 손으로 제 뺨을 손바닥으로 한 번, 손등으로 한 번 만지다가 후우, 하고 길게 숨을 내뱉는다. 정말 예상치도 못한 선물에 너무 놀라버리고 너무나도 쑥스러워한 것 같았지만, 그 감정들이 지나간 뒤에 남은 것은, 이와이즈미는 제 안색을 살피며 자리에 앉은 하나마키를 바라보다가 테이블에 올려둔 손으로 손을 뻗었다. 큰 손, 단단한 손을 가볍게 잡았다가 놓고 잠시 바지에 문지르고 다시 잡았다. 잠시만, 나, 도. 하나마키도 조심스럽게 손을 빼내고 바지에 손을 문질렀다. 그리고 얌전히 그 손을, 그 사이에 뒤집어 드러난 그의 손바닥 위로 얹었다. 조금 축축한 것 같기도 하지만, 따뜻한 손, 그의 손. 너의 손, 나의 손. 이와이즈미는 웃었다. 장미, 고마워. 집에 가서도 멀쩡해야 좀 꽂아두고 볼텐데. 그 말에 하나마키는 살짝 시선을 내리 깔았다가 그런가, 하고 운을 뗐다. 그러면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갈 때 사줘야겠네. 그래야, 보면서 내, 생각도 하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은 실패한 것 같았다. 그러나 마주한, 장미보다 여린 색으로 지은 미소에 미소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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