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하나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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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집






비가 오는 날이었다. 거미줄로 다른 약한 것들을 잡아먹거나 놀리고 괴롭히고 죽이는 것보다는 아름다운 형상으로 만들거나 예쁜 것들을 붙이고 걸어두는 용도로 쓰는 것을 더 좋아하는 하나마키에게는 탐탁지 않은 날씨였다. 아름답게 만들어두고 적당한 탄력을 유지하도록 신경써서 거미줄을 짜놓아도 습기에는 너무나도 약하여 축축 늘어져 마음에 들던 모양을 잃기 마련이었다. 이런 날에는 장사도 영 되지 않는 법이지. 하나마키는 혀를 찼다. 언제쯤 이 비가 멈출까. 우산을 쓰고 가게로 돌아가던 그는 지름길인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스팔트가 꽤 신경써서 깔려있는 큰 길과 다르게 울룩불룩하여 빗물이 크게 고여있기 마련이라 그는 조심스럽게 길을 걸었다. 그러다 가게에 가까워졌을 때 하나마키는 혀를 찼다. 이 흉물스러운 거미줄은 뭐람. 그것도 가게 앞에서부터 가게 유리창까지. 하나마키는 거미 수인이었지만 꽃을 좋아하여 결국 꽃집을 차렸으나 거미 쪽 사람들과 그외의 몇몇 사람들은 마뜩잖게 여겼다. 하나마키의 가족들은 조금 아쉬워하는 정도였다. 거미줄에 버릇이 묻어나있다면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었겠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어야 찾아내어 화를 내지, 하나마키는 귀찮아하며 거미줄을 마구 뜯었다. 얼마나 빽빽하게 거미줄을 쳐놨는지 옷감이라고 해도 괜찮을 지경이었다. 여러 손으로 빡빡하고 무거운 거미줄을 뜯어내던 하나마키는 남자의 신음소리에 크게 놀라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여럿 쓰며 거미줄을 한 겹씩 헤쳐놨을 때 보이는 까만 깃털에 하나마키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빽빽한 거미줄에 엉켜있던 것은 심지어 까마귀였다. 잔뜩 쏟아지는 비 속에 있었으니 기름기가 다시 올라오려면 좀 걸릴 것 같았다. 혀를 찼다. 어쩌다 엮인 것인지는 깨어나야할 것 같았다. 하나마키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뺨을 만졌다. 너무나도 차가웠다. 이런. 급하게 거미줄을 헤친 하나마키는 조심스럽게 까마귀를 빼내어 안아들었고 곧 가게 바로 윗층인 집으로 향했다.

입술이 창백하게 질려있어 하나마키는 불안했다. 여러 개인 팔이 부산스럽게 보일러를 틀고 여분의 이불과 베개를 꺼냈다. 푹 젖어있는 몸과 깃털에 감기도 걸릴 것만 같아 마른 옷과 수건들을 꺼내고 드라이어기도 챙겼다. 푹 젖어 몸에 달라붙은 옷가지들을 벗겨내는 것은 도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무겁기는 또 얼마나 무거운지. 옷을 벗기자 드러나는 상처에 하나마키의 고민은 화수분에 집어넣은 것처럼 쏟아졌다. 궁금한 것이 늘어났다. 묻는다고 해도 잘 답해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옷을 다 벗겨내고서 물기를 닦아내고 상처는 급한대로 소독을 하고 약을 발랐다. 아주 큰 상처가 없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마른 옷으로 갈아입히고 젖은 머리와 깃들을 꼼꼼하게 말렸다. 좀 뽀송뽀송해지고 드라이어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에 하얗게 질린 것이 좀 가셨을 때 하나마키는 조심스럽게 안아들어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꽁꽁 덮었다. 거기까지 해냈을 때 하나마키는 피곤함이 몰려오는 것 같아 침대 옆에 앉았던 그대로 쓰러졌다. 가게 내려가서 꽃도 좀 보고 해야하지만, …너무나 피곤했다. 하나마키는 저도 모르게 수마에 잡아먹혀 눈을 감았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저녁이었다. 하나마키는 눈을 뜨자마자 옆을 확인했고 옆은 비어있었다. 나간걸까. 몸에 상처가 한두 개가 아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몸이 꽤 멋있었다는 생각까지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몽롱한 얼굴로 그런 생각을 하던 하나마키는 곧 제 앞에 들이밀어지는 머그잔에 움찔 놀라 고개를 들었다. 까마귀였다. 아, 고마워요. 하고 머그잔을 받아들자 까마귀는 차분한 얼굴로 거기에 내가 독을 탔을지도 모르는 건데 그렇게 받는 건가? 하고 대뜸 말하는 것이었다. 하나마키는 아직도 꿈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꽃집을 하지만 그래도 거미라서요. 웬만한 독에는 내성이 있어서. 하나마키는 머그잔에 입술을 대고 느릿하게 마셨다. 따뜻한 코코아였다. 꽃집? 역시 거미인건가. 내려가보니 꽃만 있었는데. 어디서 데려오고 거래하는 거지? 하나마키는 멍한 얼굴로 남자를 봤다. 나무류는 거의 다 팔려서요. 거래처 사장님들한테 안 그래도 그것때문에 전화해야해요. 그리고 화분은 직접 다니면서 고르고, 보통……. 코코아를 후후 불며 마시던 하나마키는 남자가 뭔가 더 물어보지 않을까 했지만 남자는 말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자 남자는 미간을 찡그린채로 뭔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안그래도 좀 이상한 대화였는데. 하나마키는 아주 짧았던 대화를 되짚어가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난 그냥 꽃집 주인이에요. 사람을 사고 파는 그런 가게가 아니라.
아무리 졸려하는 얼굴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런 걸 말하기를 바라다니, 무르다고 해야하나. 순진하다고 해야하나. 혀를 차며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남자는 미간을 여전히 찡그린채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저체온증으로 죽을 뻔했던 걸 구해주셨는데, 괜한 의심을 했군요. 미안합니다. 반듯한 존대를 쓰는 것에 하나마키의 표정은 묘해졌다. 짧은 까만 머리. 살짝 찢어진듯 올라간 눈매와 작은 입술,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옷을 갈아입히며 봤던 좋은 몸까지. 음. 하나마키는 고민을 하다가 머그잔을 감싸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통 주먹을 쳤다. 형사님인가요? 그렇습니다. 거미니 당연히 '그런' 쪽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괜찮아요. 남자는 미안하고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 얼굴이 긴장한 듯한 무표정으로 있을 때보다는 생동감이 넘치는 것 같아 웃고 말았다. 하나마키 타카히로예요, 형사님. 이와이즈미 하지메입니다. 이름을 말하고 다시 입을 여는데 그것이 아무리 봐도 죄송합니다의 '죄'일 것만 같아 하나마키는 가볍게 입가에 손가락을 세워 댔다. 더 안 말해도 괜찮아요. 저녁이고, 아직 비가 내리니까 하루 정도는 묵으셔도 괜찮아요. 입술이 손가락에 눌려 말을 삼킨 이와이즈미는 곧 몸을 쓰다듬는 여러 손에 움찔했다. 그는 웃었다. 아직 몸이 차가워요, 이와이즈미씨. 목욕부터 하시겠어요? 아니면 식사? 나른한 눈매로 느릿하게 웃으며 하나마키는 입술을 벙긋거렸다. 아니면……. 남자는 시선을 회피했다. 얼굴은 꽤나 차분하지만 목덜미부터 벌겋게 올라오는 것이 귀여워 웃었다. 재미없는 농담을 했네요. 그래도 앞에 두 개는 정말 묻는 거예요. 고개를 기울이며 재차 묻는 것에 남자는 식사 쪽을 부탁했고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는 말에 자리에 앉았다. 집안일과는 상관이 없어진지 오래였지만 자신을 이렇게도 싫어하는 거미 쪽을 헤집어 처리하면 더이상 이렇게 가게를 거미줄로 더럽힌다든지 위태로웠던 까마귀에 대해서 자신에게 뒤집어 씌운다든가 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까마귀를 만난 것은 좋았지만 거미들의 생각에는 다소 불쾌해졌다. 두고봐야겠지. 하나마키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미소와 함께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했다. 일단은 저녁 식사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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