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하나이와
리퀘스트박스 :: 하나이와 :: 쌍둥이 육아
오메가버스 요소 아주 살짝 있음






오전 7시 반, 하지메는 제 손을 잡는 작은 손에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이 작고 부드러운 고사리 손은 꼬옥 손가락을 쥐었다가 이어 채 손가락들을 다 감싸쥐지도 못할 정도로 작으면서도 고집스럽게 손을 잡아왔다. 제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잠들어 있는 남편의 머리가 무겁게 느껴져 조심스럽게 옆에 있는 베개에 뉘이게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주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간신히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있는 것을 보자마자 그는 바로 몸을 일으키고 아이를 안아들었다. 유이, 나쁜 꿈이라도 꿨니? 작은 등을 조심스럽게 손바닥으로 쓸어내리고 옆얼굴에 입을 맞추다 바로 떨쳐낸 이불을 함께 덮었다. 유이는 눈물을 셔츠에 찍어닦아냈고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거리는 가마에 살짝 입맞추고 떨어져 얼굴을 마주했다. 눈물이 떨어진 뺨을 조심스럽게 만지다 미즈키는? 하고 물었다. 아직, 자고 있어. 그는 고개를 끄덕이다 웃었다. 잠꾸러기 아빠랑 미즈키는 자게 두고 거실로 가 있을까? 응!
설마, 하는 마음에 갔던 병원에서 하지메는 내과에서 진료를 받다가 오메가과로 옮겨야겠다는 얘기에 당혹스러워했고 곧 초음파 사진을 들고 병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새까맣고 반들거리는 초음파 사진은 아직까지는 뭐가 뭘 가리키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화면으로 볼 때 의사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그랬지만 나오고 나니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가 멍했다. 아이. …아이라. 그는 저도 모르게 머뭇거렸지만 곧 전화를 걸었다. 타카히로, 아빠 됐다, 너…. 그리고 메일로는 그 자리에서 초음파 사진을 들고 있는 사진을 찍어 보냈었다. 그날, 하나마키 타카히로는 눈이 살짝 부어서 집에 들어왔다. 당신─결혼하고서부터는 종종 하지메는 그를 '당신(あなた)'라고 불렀고 그는 낯설어 하면서도 좋아했다, ─ 울었어? 당황하며 손을 뻗어 눈가를 만지는 것에 울컥했던 것인지 타카히로는 그 손을 부여잡고 하지메, 내가 정말 잘 할게, 사랑해, 하고 다시 울었었다. 손이 눈물로 젖어가는 것을 느끼며 하지메 또한 그를 끌어안았었다. 회사에서 울었던 탓인지 그는 금방 그쳤고 조금 쑥스러워하는 얼굴로 웃어보였다. 음, 그때는 놀라긴 했지만 정말 귀여웠지. 남자 오메가의 임신, 그것도 쌍둥이. 아무리 정보를 찾아보고 책을 읽고 마음 준비를 다져보아도 닥쳐오는 시간 앞에서 그는 공포와 무력감을 느꼈다. 이전보다 조심해야하는 것도 많아졌고 배 이상으로 스스로의 상태를 살피고 챙겨야했다. 생각한 것보다 힘들고 괴로웠으며, 외롭기도 했다. 섬세한 그가 수시로 챙기지 않았더라면 우울증에 잠겨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동창들과 그의 소꿉친구, 거기에 동료 선생님들, 학생들까지 그의 임신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요즘도 좀 그렇게 얌전하게 굴면 좋을텐데. 물론 그때 자신을 신경써주던 아이들은 졸업한지 오래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진통을 느끼고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에 뺨을 잡아 겨우 입을 맞추고 수술실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을 때 창문 밖으로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고 자신의 손을 꼬옥 잡고 앉은 채로 잠들어있는 타카히로를 볼 수 있었다. 빗소리도 쌔근거리는 숨소리도 모두 귓속으로 파고들어와 그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아이들의 이름은 미리 정한대로 하나마키 미즈키, 하나마키 유이라고 붙여주었고 품에 안았다. 아주 작고, 작은 아이들을 안았을 때의 느낌은 여전히 생생했다. 물론 지금이야 많이 커져서 안아들면 조금 묵직하다 싶었지만 한참 멀었다. 주먹 세 개를 연이은 정도로 작았던 아기들은 어느새 걷고 뛰고 말도 할 줄 알았지만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었다.
이불로 감싼채로 유이를 안아들고 안방에서 나온 그는 소파에 앉아 살짝 높은 체온을 손끝으로 느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이, 무슨 꿈을 꿨니? 응? 아빠가…고질라가 되어서 가버렸어…. 이불을 꼬옥 쥐고 하는 말소리는 크지 않아 고개를 기울였고 그 내용에 그는 고민하다가 고질라가 되더라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며 볼에 가득 입을 맞추었다. 아빠는 무슨 꿈을 꿨냐고 역으로 물어오는 것에 그는 기억을 더듬어 과거에 꿨던 꿈에 대해 말을 했고 유치원에서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도 물었다. 서로 답하고 묻고 답하기를 여러 번, 말똥말똥한 눈동자를 바라보다 시계를 본 하지메는 먼저 일어나 기지개를 느릿하게 폈다. 유이도 그 옆에서 기지개를 한 번. 잠꾸러기들을 깨우러 가볼까? 하는 장난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제안에 유이는 통통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그는 유이와 미즈키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가볍게 두들기고 미즈키? 하고 이름을 한 번 불러본 다음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불을 발로 마구 찼는지 이불은 간신히 배를 덮고 있었다. 잠버릇이 험한걸까. 감기가 들거나 배가 탈이 나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런 걱정이 퐁퐁 솟았지만 입고 있는 옷이 살짝 올라가 동그란 배가 보이는 것도 머리가 산발인 것도 귀여워 그는 큭큭 웃었고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즈키, 일어나야지. 유치원 가야지. 목소리에 눈썹이 잔뜩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구겨졌고 곧 입술이 삐죽거렸다. 어쩌면 저런 걸 닮았을까. 두 아이의 삐죽거리는 입을 타카히로는 좋아했고 자신 역시 저를 닮은 것 같아 특히 귀여워하는 부분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뺨을 만지다가 손을 잡아 윗몸을 일으켰지만 금방 풀썩 뒤로 누워버리는 것에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렇게 웃고 있어? 하고 뒤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리기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뻗친 머리칼, 분명 만지면 까슬할게 분명한 턱과 뺨, 그러나 그는 손을 뻗어 뺨을 만지고 입을 맞추었다. 좋은 아침이야, 타카히로. 으응, 하지메도…. 근데 왜 유이한테 깨우라고 한 거야. 그러면 다른 짓 안 하고 잘 일어나니까 그렇지. 살짝 타박이 섞이긴 했지만 장난스러운 말투에 타카히로는 뒤에서 그를 끌어안고 이마를 어깨에 부벼댔다. 손은 어깨 위를 가로 질러 부빗거리고 있는 머리에 닿았다. 제멋대로 뻗치긴 했지만 감촉은 부드러워 한참을 만지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는 정말, 미즈키만 남았다. 어쩌면 좋을까, 어떻게 깨울까 고민하는 것도 잠시, 그는 장난스럽게 열 손가락을 기름을 잘 먹은 크랭크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그 손을 그대로 만세를 하고 있어 훤히 드러난 겨드랑이 아래로 가져갔다. 꿈틀꿈틀. 그는 소리내어 웃지도 못하고 입술을 비죽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그에게 눈짓을 했다. 눈짓이 가리치고 있는 건 작은 발바닥. 간질간질간질, 간질간질. 정성스러운 손놀림에 입술을 꾸욱 다물고 작게 꿈틀거리던 미즈키는 끝내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간지러워어! 하고 벌떡 일어나고도 거실을 통통 뛰어다니는 모습에 그는 푸하하 웃고 말았다. 자자, 공주님들 어서 씻고 나와야지. 네─! 하지메는 욕실로 들어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며 눈 사이 콧대를 지긋하게 눌렀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통통거리며 씻으러 들어간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그 이후는 전쟁이었다. 좋아하는 접시와 젓가락 숟가락을 놓고 밥과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내어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이 먹는 사이에 도시락도 네 개를 챙겨야 했다. 결혼과 육아에 늘어난 것은 요리솜씨와 속도이리라. 꼭 비엔나 소세지를 문어 모양으로 만들어야 좋아하는 딸들(과 남편)에 그의 손길은 바빴다. 준비는 주말에 다 해놓기는 했지만 모조리 넣어 뚝딱 도시락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 물론 타카히로 역시 그의 옆에서 열심히 볶음밥을 만들기는 했지만 계란으로 말끔하게 싸는 것은 솜씨가 여전히 어설퍼 맡길 수가 없었다. 오늘도 하나는 맡겼지만 밥을 많이 넣어 터지는 바람에 그 오므라이스는 하나마키 하지메씨의 도시락을 차지했다. 그래서 그 날 아침 완벽하게 밥그릇을 비우는 역할을 맡은 것은 타카히로, 그였다. 어렸을 때는 둘이 경쟁적으로 먹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둘이 나란히 편식을 하고 안 먹으니 고민스러웠다. 타카히로는 밥그릇에 덩그라니 남아있는 콩들을 바라보다 숟가락으로 모조리 모아 입에 넣어 씹었고 그 모습을 보며 유이와 미즈키는 히죽거렸다.
도시락을 만들고 밥을 먹고 먹인 다음에는 욕실로 데려가 네 가족이 동시에 이를 닦았고 세수를 했다. 옷은 다행히 어제 고른 것을 입겠다고 하여 굴곡없이 넘어갔다─이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로, 옷장을 활짝 열어두고 옷을 고르고 입었다가도 이건 아니라고 짜증을 내기도 했으며 한 쪽이 입은 옷을 샘내는 바람에 빨랫대에 걸려있는 옷을 드라이기로 말려 입혀 보내는 일도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옷을 입고 예쁜 양말을 골라 스스로 신게 하고 오늘은 더 빨리 신은 것 같네? 같은 칭찬을 하는 사이에 정장을 입고 나온 타카히로는 빠르게 소파에 앉고 다리 사이를 툭툭 쳤다. 오늘 히로 아빠한테 받을 사람. 나! 미즈키가 손을 번쩍 들고 금방 자리를 잡아 앉았다. 고개를 딱 든 모습이 오늘 입은 원피스와 어울려 정말 공주님처럼 보였다. 요리는 하지메 쪽이 좀 더 익숙했지만 아이들 머리 묶는 솜씨는 타카히로 쪽이 좀 더 위였다. 저 섬세한 머리 땋는 솜씨라니.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유이를 보고 웃은 그는 소파 스툴에 앉으라고 하고서 머리끈과 빗을 챙겼다. 머리를 묶고 땋는 동안에 두 아이들은 조용했다. 약간 집중하여 머리를 묶어준 다음에 반짝거리는 은빛 손거울로 머리를 보여줬다. 괜찮아?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아쉬움이 묻어있는 것 같아 그는 고민에 빠졌지만 유이의 뺨에 입을 맞추고 웃었다. 내일은 히로 아빠한테 묶어달라고 하자.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외투를 두둑하게 입히고 가방과 도시락을 챙긴 네 사람은 곧 현관문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문에 주루룩 걸려있는 준비물 목록을 보고 빠진 것이 없는지 챙겼다. 하도 정신이 없기에 하지메가 고심 끝에 내놓은 방법이었는데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메 아빠, 축구화 챙겼어? 히로 아빠는 보조 배터리는 챙겼어? 아, 맞다. 신은 구두를 급하게 벗고 안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그는 큭큭 웃었다. 곧 한 손에 보조 배터리를 들고 그 손을 흔들며 나오는 것에 아이들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자, 가자, 가자. 하고 열쇠를 각자 집어 주머니에 넣고 현관문을 열었다.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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