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20140510

  
  


망각
당신이 나를 부르는데 왜 내 이름이 아닌지 궁금해졌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평소보다 멍한 머리로 창문을 열었다가 들이치는 비에 놀라 도로 닫고 말았다. 젖어버린, 새하얀 팔뚝에 쭈뼛 소름이 돋는다. 깜짝 놀라버린 몸을, 손을 추스르고 도로 들어가려고 했다. 후두둑. 들어오지 못한 침입자들이 끊임없이 문을 두들김 부숴져 내려가는 소리에 그는 어깨를 움츠렸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로 그는 비가 들이친 창가를 훔쳐냈다. 손은 축축하다 못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다. 바지춤에 손을 문질러 닦았다. 하지만 그는 곧 손을 떼버리고 허공에 손을 털어버렸다. 손을 닦아낸 바지는 손바닥 모양대로 진한 회색으로 젖고 말았다. 불쾌했다. 잠깐 바지에 문질러 닦는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손은 여전히 차가웠고, 축축했다. 손끝이 조금씩 얼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손을 뻗어 천천히 베란다 문을 닫았다. 추워. 그는 작게 중얼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옆에 놓인 원형 테이블 위에 놓인 티슈를 잡아 당겼다. 작은 꽃무늬들이 빼곡하게 그려진 상자가 들썩거리다 툭 떨어졌다. 손가락을 부드럽게 감싸던 티슈는 호수에 빠져 죽어버린 오필리어처럼 흠뻑 젖어 흔적도 없이, 아니 손가락을 감싼 촉감만을 남기고 녹아버렸다. 그는 손가락에 감긴 것들을 쓱쓱 긁어 모아 뭉쳤다. 휴지통에 버렸다. 손은 여전히 축축하기 짝이 없었다. 불쾌했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배가 고팠다. 오른손을 뻗어 리모컨을 찾아 바닥을 더듬어댔다. 축축함이 가신 손바닥에 닿는 것은 그저 차갑고, 조금의 요철이 있는 마루바닥뿐. 원하는 것은 손톱 끝에 걸리지조차 않았다. 그는 온 몸에 힘을 뺀 채로 천장을 바라봤다. 시끄러운 텔레비전 소리는 귓가에 맴돌기만 할뿐, 제대로 들려오지 않는다. 무슨 예능 프로그램이나 토크쇼를 하는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여자들의 요란스러운 비명소리가 얇은 텔레비전 양 옆에서 터져 나왔다. 그는 미간 사이로 주름 두 개가 나란히 나도록 인상을 찡그렸다. 망할 리모컨. 그는 천장을 향하던 고개를 돌려 손 끝을 바라봤다. 그가 그토록 찾던 리모컨은 꽃병에 꽂혀있었다. 그리니까, 회색 몸통에 빨간색 전원버튼을 가진 리모컨은 물이 반쯤 차있고, 온갖 꽃들이 요란스럽게 꽂혀있는 꽃병에 꽂혀있었다. 그는 차가운 손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 망할. 도대체 누가 리모컨을 저기에, 저렇게 둔건지. 그는 눈을 깜빡여댔다.
 …? 그는 노래 사이를 비집고 들려온 목소리에 눈을 깜빡이며 한 쪽 이어폰을 뺐다. 그는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몸을 돌려 제 뒤에 서있던 사람의 얼굴을 바라봤다. 심하게 무언가를 얼굴에 바른 탓인지, 아니면 너무나도 놀라버린 것인지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을 응시하며 그는 여전히 눈을 깜빡였다. 그가 눈을 깜빡이는 것은 눈이 뻑뻑하다, 라든가 눈에 먼지가 들어갔다는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원래 길을 걸었다. …!!! 그는 그 사람의 불안한 외침을 뒤로 하며 이어폰을 다시 꽂았다.


  당신이 나를 부르는데 왜 내 이름이 아닌지 궁금해졌다.
-이이체, 「고아(孤兒)」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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