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20140115

 

 

 

 

 

 

 

건조한 충동

 

 

 

 

 겨울이었다, 그 날은. 바다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짠맛이 났다. 그날따라 유난히 날씨가 뼈가 시리도록 차가웠건만 나는 바다에 매혹된 것처럼 달랑 카디건만을 입고서 밖을 나갔었다. 베란다에 놓인 조촐한 의자에 앉아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만 봐도 될 것을 나는 굳이 나갔었다. 바다는 조금 떨어져 있었기에 나는 추위에 조금 떨면서도 걷고, 또 걸어서 바다에 다다랐다. 검고 딱딱한 아스팔트에서 한 발자국을 떼어 모래사장을 밟았을 때, 신발 고무창 아래로 느껴지는, 모래알이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들어 나는 네가 사준 지 갓 2년이 된 신발은 조심스럽게 벗어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바다에는 사람이 없었다. 겨울이기도 했고, 원체 인적이 드문 곳이었기 때문도 있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자 절벽처럼 단단하게 끊긴 아스팔트서부터 시작된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발자국이 일정한 간격으로 모래사장 위에 찍혀 지금 서 있는 내 발꿈치 언저리까지 이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건조한 모래 위에 밋밋하게 찍힌 발자국 한 쌍. 그뿐이었다.
 밀려오는 파도에 축축하게 젖은 모래를 밟았을 때 나는 이유 모를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알알이 밀려드는 진한 갈색 모래알들. 바다에 오기로 약속한 지 4년 만에 겨우 오게 된 바다는 사람도 없고, 그 흔하다는 갈매기도 하나 없었다. 그저, 파도에 휩쓸려온 조개껍데기와 바짝 말라붙은, 색깔도 거뭇거뭇한 불가사리뿐이었다. 모래로 가득한 발끝에 모르는 새에 훌쩍 다가온 차가운 파도가 닿았다. 닿았다. 밀려들어 왔다.
 이대로 휩쓸려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며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물러서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손목이 아플 정도로 잡아당겨 졌다. 나는 비틀거리며 그대로 끌려가 물러서고 말았다. 철썩. 한참 뒤로 끌려간 것 같았지만, 커다란 파도는 결국 발목을 파랗게 적셨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야, 너 미쳤어!"

 눈앞에 보인 것은 조금 질린 듯한, 하지만 바람에 붉게 뺨이 터버린 얼굴이었다. 그는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로 몇 번이고 나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곧 돌아온 것은 뜨거운 한숨과 따뜻해서 아프게까지 느껴지는 품이었다. 뛰어온 것인지 뜨거운 숨은 몇 번이고 귓가와 목덜미를 들락날락거렸다. 그의 어깨가 크게 들썩거렸다. 나는 팔을 둘러 안았다. 그는 말이 없었다.
 그의 뜨거운 숨이 가라앉아 잠잠해지고, 그에 따라 어깨의 움직임도 잦아들었을 때, 그는 나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는 그리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잡고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고개를 절대 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는 의외로 쉽게 고개를 들어주었다. 나는 뺨을 잡았던 손을 뒤집어 손등으로 그의 눈가를 눌러주었다. 그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가자, 돌아가자. 겨울 바닷바람이 너무 건조했는지 그는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다가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는 조금 움찔하면서도 내 손을 굳게 맞잡고 있었다. 모래 위로 거칠게, 나의 발자국보다 크고 넓은 사이를 두고 찍혀있는 발자국을 조금 바라보다가 도로 고개를 돌려 앞을, 그리고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제대로, 깍지를 껴 맞잡았다.
 뚝뚝 갈라진 아스팔트에 다다랐을 때, 그는 깍지를 풀고 나에게 대신 신발을 들려주었다. 나는 별 말없이 신발을 들었다. 아무래도 발이 젖었으니 신발을 신고 가기는 무리였다. 신발을 따로 챙겨온 것도 아니었고.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그는 나에게 등을 돌리며 조금 쪼그려 앉았다. 업혀. 어? 업히라고. 나는 결국 업히고 말았다.


가는 길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그 또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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