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하나이와

#이와른_전력 60분

35주차 : 우산





 열사병에 유의해야할 정도로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던 중에 하늘이 찢어졌다. 체육관 전체를 으스러뜨리는 천둥번개 소리에 이와이즈미는 크게 어깨를 움찔했다. 타학교든 같은 부원들끼리든, 집중해야 하는 연습 경기 도중이 아닌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그는 가볍게 건너편으로 쳐 보내야하는 공을 높지 않게 던지고 받아냈다. 집중이 깨진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고, 하나 둘씩 시선을 크지 않게 난 창으로 던졌다. 왜 갑자기 비가 오느냐, 부터 시작해서 우산을 안 가져왔다는 걱정스러워하고, 자신은 우산을 두 개나 갖고 있다고 약을 올리고, 비가 오는 것이 싫다는 투정을 부리고, 자신은 비 오는 게 좋다고 신이 나고─다양한 목소리들이 조금씩 몸을 키웠고 금방 웅성웅성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주장인 오이카와 역시 다소 당혹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는 봤지만, 이렇게 천둥까지 치고 체육관을 울리도록 굵은 빗줄기가 쏟아질 줄은 몰랐었다. 그러고보니까 우산이 없네. 이와이즈미는 공을 잡지 않은 손을 들어 뒷목을 긁었다. 그 사이, 큰 박수소리가 사이를 갈랐다. 이와이즈미는 코치를 향해 금방 고개를 돌렸고, 다른 부원들도 들쑥날쑥하게 고개를 돌려 코치를 바라봤다. 미조구치는 제게 모여드는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 자.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연습하고 집에 가자. 네! 그리고 체육관은 다시 크게 호흡하는 소리와 기합, 호루라기 소리, 달리고 뛰어오르는 발소리, 공이 튀어오르는 소리로 가득 찼다.

 연습이 끝나고 나서, 체육관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 부원들 사이에서는 들쑥날쑥 우산을 구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이와이즈미가 입을 열어 누구 우산 빌려줄 사람? 하고 물었을 때 바로 경쾌하게 답을 한 것은 하나마키였다. 하나 더 있어서, 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그는 환하게 웃고 고맙다고 답했다. 다행히 푹 젖어서 집에 갈 일은 없겠구나.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였지만, 무시무시하게 쏟아지는 저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집에 갔다가는, 집에 도착해서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근다고 해도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와이즈미는 크게 안도하며 옷을 빠르게 갈아입고 하나마키를 기다렸다. 가방을 메기 전, 그는 가방에서 우산 하나를 꺼내 이와이즈미에게 먼저 건넸고, 아무렇게나 수건이나 옷가지가 너저분하게 있는 캐비닛 안으로 손을 넣어 우산을 찾았다. 찾아 헤맸다.

 없어!

 뭐?

 이와이즈미는 저도 모르게 제 손에 쥐고 있는 우산을 꽉 쥐었다. 분명 여기다가 뒀는데, 없어졌어. 하나마키는 울상을 하며 그를 돌아봤고, 그는 그 애처로운 눈빛에 캐비닛 안으로 시선을 보냈다가 그 안을 좀 정리하고 지내라는 잔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냄새가 안 나는게 용하다 싶은 참상이 그 넓지 않은 캐비닛 안에 펼쳐져 있었다. 그는 추욱 처진 입꼬리를 한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리할게…. 기왕이면 지금 정리하고. 기다려줄게. 하나마키는 잠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가 일자로 그어진 입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널려있는 옷과 수건들 중에서 조금 축축하다 싶은 것들은 가방에 챙겨 넣었다. 쓰러져있는 데오드란트나 에어파스도 곱게 세워두고 옷걸이에 옷을 걸고 수건은 단정하게 접어 두니 그럭저럭 깔끔해보였다. 하나마키는 몸을 열어 그에게 보였고 그는 왠지 감독관이 된 것만 같은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응.

 밖으로 나오니 쏴아아, 쏟아지는 빗소리에 기분이 꽤 좋았다. 집에 가는 동안에 입고 있는 옷이 좀 젖어버리거나 신발이 푹 젖어버리는 건 그와 별개의 일이었지만. 하나마키는 그에게서 우산을 받아서 폈고 먼저 빗속으로 한 발자국 내딛었다. 예의없이 마구 우산을 두들겨대며 우산을 내리라고만 하는 것 같은 빗방울들의 성화에 귀가 먹먹해졌다. 이와이즈미는 제게 내밀어진 손을 보다가 우산 안으로 쏙 들어갔고 하나마키는 머쓱하게 손을 잡아내렸다. 

 평소에는 서로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골목에서 두 사람은 멈춰섰다.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돌렸다가 왼쪽 어깨가 푹 젖어있는 것을 보고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우산이 그다지 크지 않지만 서로 요령껏 잘 쓰고 가는 덕분에 비를 많이 안 맞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왜 이렇게 둔한 것인지! 이와이즈미의 표정에 하나마키는 어깨를 손등으로 털어보지만, 푹 젖은 어깨가 털어본다고 뭐가 변하기는 할지. 손등만 젖을 뿐이었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조금 숙여 그의 얼굴을 살폈다. 괜찮다고 말을 하면 크게 혼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멍청이야, 멍청이.

 이와이즈미.

 하지메.

 …하지메, 난 진짜 괜찮은, 데.

 이와이즈미는 그의 얼굴을 올려보다가 오른손에 붙어있는 엄지와 검지가 들썩거리는 것을 꾹 주먹 쥐는 것으로 참았다. 대신 왼손으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제법 과감한 스킨십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가 눈웃음을 지었다. 오른손에 들려있던 우산을 왼손으로 옮기자 잠깐 기울기가 무섭게 매달려있던 빗방울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순간 가벼워지는 무게에 하나마키는 작게 웃었고, 이어 빈 손으로 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손등으로, 손가락으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러고서야 그는 조금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을 한 번씩 고갯짓으로 가리키고서 물었다. 데려다줄까? 아니면 너가 데려다 줄래? 먹먹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하나마키는 조금 고민하다가 전자를 고르고, 조심스럽게 집 앞에서 입을 맞춰달라고 졸랐다. 이와이즈미는 웃었다. 그리고 잠시 잠잠해져 있던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바로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아파! 우산이 크게 위로, 그리고 왼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아픈 옆구리를 부여잡지도 못하고 놀라 잽싸게 우산을 바로 썼다. 미안해, 하지메. …그러니까, 는 아니지만 바깥인데 좀. 이렇게 허리 감싸고 있는 건 괜찮고? 싫어? 아니요. 좋습니다. 이와이즈미는 그 사이에 젖어버린 뺨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았고 저가 꼬집은 옆구리를 살살 문질렀다. 빨리 가자. 춥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가자고 말한 사람과 그에 긍정한 사람 치고는 느린 걸음으로 두 사람은 한 명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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