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하나이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 바다, 그 이후와 이전





 여행은 짧았다. 좋았다. 코 끝에 닿는 바다 냄새와 밟히는 모래가 내는 아주 작은 소리들, 드리우다 뒤로 밀려가버리는 파도. 숙소는 생각보다 깨끗했고, 저녁 식사는 만족스러웠고, 숙소에서 소리를 죽여가며 나눈 밤도 근사했다. 하나마키는 고백을 한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너무나도 설레고 설렜다. 이와이즈미는 생각보다도 훨씬 다정한 남자였다. 스킨십은 좀 어색해하는 것 같았지만 싫어하지는 않았기에 하나마키는 남의 눈이 없을 때면 곧장 손을 잡았다. 아, 손깍지를 먼저 한 것은 이와이즈미였다. 먼저 낀 손깍지에 저가 놀라버려서 엄청 크게 움찔했지만 이와이즈미는 특유의 멋있는 미소를 지으며 이상하냐고 물었다. 절대! 그럴리가! 하나마키는 괜히 제 손으로 손깍지를 꼈다. 보고 싶다. 그리고 그 멋있는 이와이즈미는 음료수를 고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뒷모습도 잘생겼다. 문득 그에게 못생겼다는 말만 골라하는 오이카와의 얼굴이 생각이 나 입술을 삐죽거렸다. …타카히로! 뭐하고 있어, 기도는 왜 하고 있어? 기도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하나마키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바로 다가가 손깍지를 꼈다. 그냥, 좋아서. 그렇게 말하며 하나마키는 그가 고른 것을 봤다. 역시나, 라고 해야할까. 낡은 바구니에 들어있는 저가 좋아하는 것들을 바라보다 두 개를 골라서 손에 들었다. 이거 두 개는 빼자. 다 내가 좋아하는 거잖아. 나도 좋아해. 그렇지만 이건 너무 셔서 별로라며? …먹다 보면 좋아지겠지. 약간 고집을 부리는 것만 같아 하나마키는 양 허리에 손을 얹으며 하지메군, 하고 불렀다. 나는 이걸로도 충분해. 나도 하지메가 좋아하는 거 좋아한단 말야. 잠깐동안 벌어진 눈싸움은 이와이즈미의 포기로 끝났다. 그러면 이걸로 먹을래. 작은 꽃게 그림이 그려진 과자 봉지를 보며 하나마키는 씩 웃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두 사람은 이와이즈미가 고른, 하나마키가 좋아하는 것들을 먹었다. 깔끔한 커피를 시작으로 하나하나. 하나마키는 이렇게 저가 좋아하는 것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가 놀라웠고, 저는 그처럼 완벽하게 알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살짝 울적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걸 잘 아는 거야? 하는 물음에 이와이즈미는 그를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하나마키는 조금 얼굴이 빨개질 것 같았다. 저가 좋아하는 얼굴이었다. 조금은 날카로울 수도 있는 얼굴이지만 미소를 짓거나 웃을 때면 눈꼬리가 살짝 접히고 입꼬리가 말끔하게 올라갔다. 웃는 모습도 저렇게 멋지지. 너는, 너가 좋아하는 걸 한참 쳐다봐. …그러니까 알지. 그 말에 하나마키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대화할 때 상대를 쳐다보는 거야 보통 다들 그럴테니까, 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약간의 공백 후에 하는 말이 머리를 아주 흔들어버렸다. 하, 하, 하지메는 그러면, 그러니까! 이와이즈미는 씩 웃었다.



* * *



 오이카와가 조금 예민하게 굴던 때가 있었다. 내가 모른 척 하기도 힘들다니까. 하고 한숨을 쉬면서 더울 게 분명한데도 저를 꽉 끌어안으며 꿍얼거리는 것에 등을 툭툭 치며 더우니까 저리 비켜라, 하고 얘기하다가 무엇 때문에 그런지 궁금해져 오이카와의 몸에 힘을 주며 반대 방향으로 선 적이 있었다. 리시브로 빨개진 팔을 만지작거리는 하나마키가 시야에 들어왔지만 눈이 바로 마주쳤다. 하나마키는 웃으며 이와이즈미, 덥겠네. 하고 장난스럽게 말했는데 오이카와의 꿍얼거림만 더 커질 뿐이었다. 왜 그러는데, 오이카와. 오이카와씨는 말 안 할 거예요. 새침한 목소리를 내며 대꾸하는 것에 이와이즈미는 달래기를 그만 두고 하나마키를 한번 더 봤다. 그리고 오이카와를 한 번. 예민한 소꿉친구를 둔 이와이즈미도 예민하지 않기는 어려웠다. 예민한 사람과 어둔한 사람이 소꿉친구가 되기는 어려울 일일 것이었다. 시덥지 않은 것이든 중대한 일이든 화를 내고 다퉈도 금방 서로 화해할 수 있는 이유에는 서로에 대한 기민함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었다. 그 날 이후로 이와이즈미는 한 가지 시선을 더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오이카와가 그렇게 말했던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열에 들뜬 그 시선을 그동안 몰랐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였다. 오이카와야 그런 시선에 둘러싸이지 않는 날이 더 드물 정도이니 ─이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문이라든가 교실, 체육관까지도 호의로 반짝이는 얼굴을 하는 여자애들이 따랐기 때문이다. ─ 금방 그의 시선을 알아차린 것인가 싶었다. 이와이즈미는 문득 1학년 때의 하나마키를 떠올렸다. 지금보다 키가 작았고 몸집도 작았지만 개구진 얼굴은 변함없는, 그 모습을. 그리고 왜 자신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설레발을 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오이카와가 '모른 척 하기도 힘들다'고 말할 정도면 웬만큼 맞아 떨어질 것이었다. 뭐가 되었든. 생각에 잠겨보지만 저가 하나마키가 아닌 이상 알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날 이후로도 그 시선은 자신을 열심히 좇았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에 더더욱. 이와이즈미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같은 동성에게 그런 눈빛을 받는 것에 놀라기에는 이와이즈미의 경험이 무색했다. 중학교 때 졸업식 날 간신히 고백을 하던 후배의 얼굴이 아주 흐릿하게 떠올랐다. 저를 몰래 따라온 오이카와의 얼굴도 생각이 났다. 그때도 저는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다만, 고백하는 상대를 자신이 잘 몰랐기에 미안했었다. 마음을 받아줄 수 없는 것도.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파묻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즈미, 이와이즈미! 목소리에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겨우 들었다. 창문 바깥을 바라봤다. 캄캄했다. 허둥지둥 일어나려고 하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뻔한 것을 단단한 손이 붙잡았다. 잡았다.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붙잡은 손은 이어 자신을 부축했고 제대로 일으켜 세웠다. 내가 안 왔으면 어쩌려고. 부주장님이 자다가 부활에 빠지면 어떡해. 장난스러운 말소리가 들리고 분홍색 머리칼에 시야가 어지러웠다. 이와이즈미는 겨우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을 하다가 자버렸나봐. 잔뜩 잠긴 목소리에 팔을 잡은 손이 멈칫했다.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운동장을 차지하고 있을 축구부 소리도, 복도를 넘어서 들릴 관악부 소리도, 다른 떠드는 목소리도. 약간은 어색한 웃음소리가 침묵을 깼다. 웃음 소리가 가라앉았고 곧, 어서 가자. 갑자기 일어나서 머리가 어지러운 거야? 하고 속삭이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머리가 그 말대로 어지러워지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푹 숙였다. …책상이 또렷하게 보였다. 다들 기다리고 있어. 코치님한테 혼나겠네.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하는 말에 이와이즈미는 간신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자. 미안.



* * *



 하나마키는 얼굴이 빨개져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자, 아. 하고 과자를 집어 제법 자연스럽게 먹여주고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하나마키가 고백을 하는 것을 그 이후로도 꽤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아니, '꽤'라고 하기는 좀 그랬다. 시간이 꽤 지났다고 하려면 적어도 반년이 지나야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자신이 그 날 반해버렸으니 좋아하는 마음을 서투르게 키우던 입장으로는 꽤, 였다. 좋아하는 것을 아는데 그것을 기다리는 입장으로는……. 잠깐, 기다렸다고?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창에 가볍게 박았다. 이거 완전, 나빴잖아.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그대로 돌려 하나마키를 바라봤다. 가볍게 박은 것이었지만 조금 놀란 모양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바라보는 얼굴이 귀여웠다. …나빴던 만큼 더 잘해줘야지. 그런 다짐을 하며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바로 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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