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하나이와

바다





 온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더위였다. 방학하기 전에, 아니 그 이전에 약속한 바다 여행을 가기에는 너무나도 더운 여름날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같은 기차에 몸을 싣고 바다로 향했다. 저 멀리, 미야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와이즈미는 기차표가 땀에 젖는 것만 같아 조심스럽게 지갑에 넣었다. 그렇지만 맞잡은 그의 오른손과 하나마키의 왼손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땀이 나서 그만 손 잡은 것을 풀고 바지에다가 손바닥을 문질러 닦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이와이즈미, 얼굴 빨개. 많이 덥냐."
"…그러면 넌 안 덥냐."
"아니."

 그런 별 시답지 않은 얘기만 오갈 뿐이었다. 붉어진 얼굴은 그저 쨍쨍 내리쬐는 햇빛때문이라고 둘러대다 시계를 한 번 보고는 그늘 아래로 가 앉았다. 모자를 써야할 것 같다며 하나마키는 얌전하게 생긴 밀짚모자 같은 것을 꺼내 썼고, 이와이즈미는 적당히 집에서 가져온 야구모자를 썼다. 선크림은 바르고 나왔지? 빨개진 것이 단순히 햇빛 때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보통 내리쬐는 것이 아닌 날씨에 하나마키는 조금 걱정스럽게 말을 꺼냈고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피부가 그렇게 하얀 편은 결코 아니었으나 그는 피부가 꽤 잘타는 편이었다. 그런 이유로 여름날에 바깥에서 무방비하게 뛰고 난 다음에 옷을 갈아입을 때면 옷 범위 바깥과 안이 차이가 나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는 것은 전적으로 그에게 반해버린 하나마키의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눈치챈, 그의 절친한 동급생, 마츠카와 잇세이는 크지 않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시선을 돌려 하나마키를 슬쩍 보고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 속이 찔려 애써 고개를 돌리기도 했었다. 지금은 서로 벗은 몸을 보여주는 게 신경쓰여 하나마키는 고개를 함부로 돌리지 못했다. 사귄다고 그 거리가 한번에 좁혀드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니, 더 신경이 쓰일 따름이었다. 하나마키는 뚫려있는 야구모자의 뒤로 삐죽 튀어나온 머리칼과 그 아래로 드러난 목덜미를 흘금 훔쳐보았다. 저기까지 선크림을 발랐을까. 이와이즈미의 세심함은 그런 세심함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잠시만, 이와이즈미. 하고 그를 불렀다. 그리고 뒤로 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고쳐 매고 꽁꽁 싸둔 가방을 열어 선크림을 꺼내 그 목덜미에 펴 발랐다. 여기까지, 신경써야하잖아? 여름은 이래서 귀찮다니까. 얼굴이 보이지 않아 조금 긴장이 풀어진 상태로 그렇게 말했다. 하얀 선크림이 피부 위로 펴발려진다, 제 손가락을 따라서……. 손끝을 움츠렸다. 다, 됐어. …고맙다. 움츠린 손끝이 간질거렸다. 선크림 뚜껑을 닫고 조금 성급한 손길로 가방에 집어넣고 지퍼를 쭉 닫았다. 선크림이 지문에 다 녹지 않아 하얗게 남아있었다. 하나마키는 조금 성급하게 손등에 손가락들을 문질렀다. 입을 조금이라도 열면 이상한 말을 쏟아낼 것 같아 이와이즈미는 입을 다물었다. …기차가 왔다.



 기차에서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창밖을 주로 봤다. 이렇게 단 둘이 여행을 하기는 처음인지라 너무 긴장한 탓이었다. 얼굴이 아주 흐릿하게 비치는 창문 너머로 익숙한 곳들은 금방 채 마르기도 전에 문질러버린 물감처럼 흐려졌고, 낯선 풍경들이 철도처럼 엮여 지나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이와이즈미였다.

"둘이 여행하는 건 처음이네."
"응."

 하나마키는 조금 머뭇거렸고, 이와이즈미는 그의 턱끝을 바라봤다. …하지메, 손 잡아주면 안돼? 이와이즈미는 의자 즈음에 얹어둔 손을 움찔했다. 하나마키는 이따금 그의 이름을 부르고는 했는데 이와이즈미는 가끔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이름을 부르는 것은 부모님밖에 없으니 낯선 것이 먼저였지만, 그 낯선 느낌이 가시고 남는 것은 이름을 부르고 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가득한 간질거리는 설렘이었다. 도대체가……. 이와이즈미는 입술을 조금 깨물었다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에어컨이 꽤 선선하게 나왔기 때문에 더워서 그런 거라고 둘러댈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마키는 놀리는 말은 하지 않았고, 대신 손을 꼭 맞잡고 봄처럼 웃었다.
 목적지까지는 낮잠을 조금 자도 될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은 가볍게 서로 싸온 도시락을 먹었고, 같이 노래를 듣고, 얘기를 하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낮잠을 잤고, 코를 골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유리나 벽면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다. 짐을 내리느라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을 때 두 사람은 일어났다. 눈이 마주쳤을 때 하나마키는 잠기운이 가득 남아있는 얼굴을 하고서도 손을 조심스럽게 내밀어 그의 눈가를 가볍게 만졌고, 이와이즈미는 속하품을 하려다 실패하여 눈을 질끈 감으며 하품을 했고 눈가를 훔치는 손에 가볍게 눈을 깜빡였다. 다 왔나봐. 그러게. 하나마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이와이즈미는 잽싸게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이와이즈미, 여기 좀 봐."

 아주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돌렸다. 크지 않은 창문 너머로 보인 하늘과 바다는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풍경은 꽤나 근사하여 낮 즈음에 출발할지 아니면 해가 다 뜨지 않은 새벽에 출발할지 열렬히 고민했던 두 사람에게는 더 인상 깊은 풍경이었다. 기차가 멈췄다.



 둘이 예약을 한 숙소에 짐을 풀고 바다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진 이후였다. 노을을 삼켰다 천천히 토해내는 것처럼 옅은 빛을 뿜는 몇 없는 가로등과 띄엄띄엄 있는 숙소에서 켜둔 조명만이 빛났다. 가벼운 샌들과, 슬리퍼를 각자 신고 나온 두 사람은 곧 모래를 밟자마자 그것들을 벗어 손에 들었다. 가볍게 깍지를 껴 잡은 손은 가볍게 흔들렸다. 걷는 걸음 사이로 모래알들이 발가락 사이, 발바닥을 간질였고, 간질거리는 느낌이 조금 길어질 때면 파도가 가볍게 휩쓸고 지나갔다. 두 사람은 길게 말을 하지 않았다. 바람이 조금 차가워졌을 때 두 사람은 좀 더 손을 단단하게 맞잡고서 숙소로 되돌아갔다. 두 사람은 발을 씻었고, 모래가 닿은 손도 씻었으며 곧 입을 맞추고 서로의 옷을 벗겼다. 그 손길은 능숙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었다. 이따금 웃음을 터뜨리고 소곤소곤 겨우 들릴 정도로 속삭였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와이즈미는 조금 익숙해져서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입을 맞췄다. …타카히로, 히로. 조금 소심하게도 들리는 목소리에 그는 웃었다. 응, 하지메. 그날 밤 하나마키는 가슴 언저리에 키스마크를 남겼고, 이와이즈미는 어깨 즈음에 잇자국을 남겼다. 얇은 이불을 덮고 선풍기는 시간 예약을 맞춘 채로 틀어두고 잠들었다.



 애초에 계획하기를, 당일 치기에 가까운 여행이었다. 아침 해가 뜨기 직전에 일어나 습관처럼 주변을 뛴 이와이즈미는 해가 떠오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닷가로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앞에서 모래를 털고 숙소로 들어왔을 때, 그는 반바지만을 입고 조용히 잠들어 있다가 눈을 찡그리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타카히로, 일어나. 아침이야."
"……하지메군은 어쩜 이렇게, 부지런할까."

 아침이라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이와이즈미는 손을 뻗어 머리를 헤집었다. 옅은, 부드러운 분홍색 머리칼이 제 손길에 이리저리 흩어졌다가 넘겨졌다 흘러내리는 것을 바라볼 때면 기분이 차분해졌다. 고개를 저를 향해 들고 입술을 오물거리는 것을 보다 상체를 숙였다. 쪽. 하나마키는 잠기운이 가득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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