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하나이와

도련님








 새벽처럼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은 기름 냄새, 잉크 냄새를 풍기는 인쇄공장일 것이었다. 갓 인쇄된 뜨거운 소식을 담은 신문들은 사람들의 손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각지로 퍼질 것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신문들을 나르는 것은 다른, 움직이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런 수 많은 사람들 중 새벽에는 신문 배달을 하고 해가 떠있는 동안에는 바깥으로 일을 다니고 해가 진 동안에는 공부를 하고 잠을 자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저가 생각나지도 않는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와 저, 그리고 동생이 있었다. 동생은 어여뻤고 머리가 총명했다. 청년은 공부를 한다면 동생이 해야한다 생각하여 일찍이부터 일을 나갔다. 바깥 일은 험했지만 청년은 끈기가, 인내심이 좋았다. 그리고 특유의 곧고 솔직한 성격은 청년이 가진 것 중 가장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루하루 일을 하여 돈을 모으고, 월 말이 되면 어머니께 소담한 장신구라도, 동생에게 책이라도 하나 선물하는 것을 낛으로 여기는 그런 소박한 자였다. 청년은 새벽처럼 나가 보급소에서 신문을 가방 하나 가득 채웠다. 그리고 월마다 받는 명단─사실 변하는 것이 거의 없어 청년은 곧잘 외웠다─을 확인하고 담 너머로 혹은 문 앞으로 신문을 능숙하게 던져 넣었다. 신문 배달을 하는 것도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해는 넘겨버렸기에 일당을 받고 일을 하면서도 인정을 받고 있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신문을 배달할 곳은 청년이 사는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담을 가진 집, 아니 저택이었다. 높다란 돌담, 거대한 대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무성한 초록과 옛스러운 구석이 있으나 촌스럽다고는 절대 말하지 못할 건물들이 여러 채 있었다. 어릴 적, 그 돌담 너머를 보기를 소망했지만 머리가 조금 굵어진 이후로는 발꿈치를 들거나 폴짝폴짝 뛰며 돌담 너머를 훔쳐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청년에게는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청년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평소처럼 신문을 가볍게 던져넣었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려 보급소로 돌아가려 할 때 청년은 의아해했다. 왜, 떨어지는 소리가 안 나지? 그리고 청년은 돌담 너머가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처음 들었다. 도련님! 한 여종의 비명 같기도 한 목소리에 청년은 어깨를 떨었다. 도련님. 이주일 전에 이 저택으로 돌아왔다는 저택의 막내 아들일 것이었다. 청년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소란 끝에 청년은 반쯤 연행되듯이 돌담 너머, 저택의 땅을 밟게 되었다.
 양팔을 붙잡혀 끌려온 청년이 힘에 무릎을 꿇었을 때 보게 된 것은 하얀 피부의 '도련님'이었다. 그는 난처한 얼굴을 했다가 차분해진 얼굴로 주변 사람들을 물렸고 문이 닫혔을 때 그는 조금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잠에 일찍 깨서 거닐었던 것뿐인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머리 위로 신문이 떨어진 걸 아이들이 본 바람에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네. 미안하네. 하얗다 못해 창백하게까지 느껴지는 인상을 가진 '도련님'은 크지 않은 목소리로 사과의 말을 했고 고개를 마루에 거의 처박다시피 한 청년의 머리를 바라봤다. 앉기 전에 살짝 봤던 것으로는 꽤 남자다운 인상이었지만 뒷통수는 동그란 것이 꽤 귀엽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도 괜찮네. 청년은 바짝 숙였던 상체를 들고 허리에 힘을 주어 곧게 앉았다. 드러난 얼굴에 그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윽고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하나마키 타카히로라고 하네. 자네는? 청년은 혼란스러웠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라고 합니다. 종종 얼굴을 보면 좋겠구나. 이런 것도 인연이라고 한다면. 그 미소에 청년은 조금 멍하니 '도련님'을 바라봤다. 피부처럼 머리카락마저도 옅은 색채를 한 도련님의 미소는 과연 이름처럼, 꽃 같았다.
 그 다음날부터 이와이즈미는 간혹 도련님을 만날 수 있었다. 다시는 도련님이 신문에 머리를 맞는 그런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특이한 이유로 이와이즈미는 신문을 들고 돌담 너머로, 가장 외곽에 있는 도련님의 거처로 신문을 직접 배달해야했다. 번거로운 일이었기에 이와이즈미는 담당 구역을 바꿔야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손에 손을 거쳐 제게 닿은 묵직한 주머니를 받았을 때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자신이 너무나도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했다. 시종의 안내를 받아 거처에 다달으면 이와이즈미는 제 성명을 밝히고 거처의 시종장에게 신문을 건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시종장 대신에 도련님이 직접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빈도는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시종장의 얼굴을 보기가 더 힘들었다. 드문드문 만날 적의 얼굴은 파리했다고 이와이즈미는 떠올렸다. 요즈음에 만날 때와는 사뭇 달랐다. 잠들기 직전에 베개를 베고 누워있을 때 이와이즈미는 생각에 잠겼다. 비록 식견과 배움이 다른 이들에 비하면 짧겠지만 저가 할 수 있는 표현을 골랐다. 아. 이와이즈미는 떠올렸다. 귀한 보물, 옷감, 신기한 칼, 온갖 희귀한 것들을 가득 짊어와 팔던 외국 상인들의 물건들 중에서 아이 주먹만한 굵직한 진주알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진주알 같은 빛일 것이었다. 그러다 고개를 저었다. 봄에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잎. 그 같은 빛일 것이었다. 그러다 또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나하나 이어가다 그는 반을 굴러 얄팍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잠이나 자야지, 원. 드러난 귓가는 살짝 붉었다.
 도련님이 요양가있는 동안보다 상태가 더 나아보인다는 말을 전해들은 시종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도련님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일찍이 일어나고 이른 시간에 잠드는 것이 점점 습관이 되어가는 것이 보였다. 요양을 갔다 왔다지만 창백한 얼굴은 금방이라도 요절할 것 같아 가주의 속을 어지럽혔지만 지금의 얼굴은 비록 햇빛을 많이 안 본 탓에 하얗기는 해도 혈색이 돌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표정이 안 좋을 법도 하지만 최근 그의 아침은 평온하고 정갈했으며 은은한 미소가 언제나 따랐다. 시종장은 이 저택으로 신문 배달을 하는 청년의 얼굴을 떠올렸다. 청년이 돌아갈 때 뒷모습을 바라보는 뺨이 어렴풋이 상기되는 것을 시종장은 알고 있었다. 어찌 남자인가 싶기는 했으나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어찌 남자와 남자끼리 그런 관계를 가질 수 있냐고 말하겠으나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것 같았던 과거를 떠올리자면 보다 적극적으로 청년을 저택에 묶어둘 생각을 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었다. 이른 아침 신문을 받아 읽고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고……. 여느 가문의 남자들의 일상과는 다르지만 그것이 하나마키 타카히로, 도련님에게는 알맞는 일상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저택을 드나들수록 조심스러워졌다. 바로 일을 가야하기 때문에 아주 편한 옷을 입고 다니던 것도 조금은 가지런해졌다. 물론 마지막에 저택에 오기 때문에 땀에 젖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제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러워진 이유는 도련님과 대면할 때 머리가 뜨거워지는 기분을 자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간혹 신문을 건네다 손끝이 닿기라도 하면 닿은 손끝서부터 전신으로 열이 뻗치는 것 같아 이와이즈미는 입술을 꾹 다물며 그 감각을 견뎠다. 기묘했다. 처음에는 신문을 건네자마자 바로 돌아나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택에 머무르는 시간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게 명령하지도 않는 도련님을 상대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명령을 하고, 붙잡아 앉히면 꼼짝도 하지 못할 것을 분명 알텐데도 도련님은 그러지 않았다. 가야하는 것이냐, 하고 말하며 저가 걸친 고운 옷의 소매를 꾹 쥐었다가 놓는 것이 다였다. 이와이즈미는 차마 일어나기가 어려웠다. 사실 그런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이와이즈미는 거처를 떠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 말간, 옅은 머리칼을 눈동자를 미소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쏜 살같이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한참 높은 사람처럼 느껴 딱딱하게 굳어있던 이와이즈미의 어깨가 부드러워지는 것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도련님, 하고 불렀을 때 저를 보며 웃는 얼굴은 천진했다.
 도련님의 얼굴이 꽤 좋아졌을 때 이와이즈미는 과감하게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도련님이 바깥에는 잘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 저택이, 거처가 커다란 새장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이와이즈미는 도련님에게 날씨가 적당히 좋으니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어떠냐는 말을 했다. 바깥? 어디로 가고 싶느냐? 무언가를 청하기는 드물어 하나마키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듣고 싶어했다. 시장에 달콤한 과자를 파는 곳이 있습니다. 시장 중심부가 아니라 풍경도 좋고 선선하다니 도련님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도련님은 단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는 입술을 바라보던 도련님은 고개를 끄덕였고 점심이 되기 전에 양산을 들고 시중을 드는 시종들 몇과 함께 가게를 갈 수 있었다. 동그란 얇은 표면 안으로 가득 부드러운 크림이 들어있다는 과자가 시선을 끌어 이와이즈미는 조이개를 열어 동전을 꺼내 그 과자를 사 도련님에게 건넸다. 어찌 네가 돈을 내느냐. 제가 도련님께 드리고 싶어 그러한 것입니다. 노여워하지 마옵소서. …그럴리가, 있느냐. 선물이라니. 기쁘구나. 너무 얇아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뭉개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한 입 크게 먹은 하나마키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며 이와이즈미를 바라봤다. 하나를 다 먹어치운 다음 입안에 맴도는 달콤함이 너무나도 좋아서, 이런 것을 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좋아서 그는 활짝 웃었다. 그렇게 마음에 드십니까. 정말, 달콤하구나. 맛있어. 선선하게 바람이 통하는 창가에 앉아 달콤함을 누린 도련님과 너무나도 환한 웃음에 눈이 멀어버린 청년은 한참을 머무르다가 더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을 기점으로 바깥 외출은 조금씩 이어지게 되었다.
 남자끼리 붙어먹는다는 소문은 돌았다. 돌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소문을 들은 이와이즈미는 도련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렇게 가슴에 열이 솟구치고 입안이 바짝 마르고 가슴에서 느껴져야할 박동이 귓가에 맴도는 것은 비정상이었다. 그런 것이 사랑이라며 어떤 여자에게 반했냐며 놀리던 친우들도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입을 다물고 마음 속으로 내리 누르기를 여러 날. 소문을 들은 이와이즈미는 눈을 감고 말았다. 그리고 짧은 글이나마 써 저택에 부쳤다. 닿는데는 시간이 걸리겠지. …발길을 끊으리라. 꽃처럼 귀하디 귀한 도련님이었다. 저같은 것과 얽혀 그런 소문이 돌아서는 안됐다. 막내 아들이기는 하나 가문의 남자, 자손이니 그는 결혼을 할 것이었다. 누구보다 귀한 도련님은 어울리는 아리따운 아가씨와 결혼을 할 것이었다.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누가 썼는지 바로 알 것만 같은 서한을 받았을 때 하나마키는 기뻐했다. 왜 그가 이런 서한을 전했는가. 이리 글을 잘 쓴다면 내일은 같이 글을 짓자고 청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웃으며 매듭을 풀었다. 설레는 마음에 애꿎은 입술을 깨물어가며 서한을 읽어가던 도련님은 이윽고 거친 그 종이를 떨어뜨렸다. 눈썹을 잔뜩 찡그렸다가 다물었던 입을 벌려 헐떡였다. 온몸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눈가가 뜨거웠다. 아, …안돼, 어찌 이런. 아. 아아. 하나마키는 땅에 떨어져버린 종이를 바라봤다. 그가 전한 것을 이리 땅에 굴릴 수는 없었다. 잔뜩 허리를 숙여 편지를 잡은 순간 눈앞이 새카맣게 꺼졌다.
 이와이즈미는 속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외면하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배달 일을 그만두든지 아니면 담당을 바꾸자고 해야겠지. 터벅터벅. 부지런히 걸어 뛰어 곧장 닿았던 보급소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보급소에서 이와이즈미는 어제와 같은 명단과 같은 양의 신문을 받았다. 신문을 던지고 꽂으며 길고 긴 길들을 걷고 걸어 가장 끝에 보이는 저택에 마음이 복잡했다. 시종장에게 전하든 그냥 예전처럼 던져넣든 그래야겠지. 이와이즈미는 조금 갈등하다가 이전처럼 시종장을 부르는 것을 택했다. 던져넣었다 또 애꿎은 이가 신문을 맞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저택에 가까워질수록 이와이즈미는 기분이 이상했다. 집이 너무나도 적막했다. 이와이즈미는 시종장을 불렀다. 여기, 오늘 신문입니다. …왜 오늘은 직접 전달하지 않습니까? 도련님! 거처 쪽으로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았다. …당장, 도련님을 뵙고 사죄드려라. 못합니다. 만나뵙도록 해. 할 수 없습니다. 도련님과 가까이 지내니 방종하구나. 네 어찌! 도련님! 아이고! 도련님! 안되어요. 제발, 도련님! 소란스러운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가 발에 닿았을 때 이와이즈미는 정말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메. 네가 와줬구나. 날 놀래키려 그런 것이지? 응? 그런 것이지? 잔뜩 갈라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일을 그만둘 것을 미리 전한 것입니다. 도련님. 오늘 신문은 전했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지메. 어깨를 으스러뜨릴듯이 잡는 손에 헉 소리를 삼켰다. 네가 그럴리 없다. 그렇지? 내가 말을 하지 않아 그런 것이지. 하지메! 미안하다. 내가, 다 잘못했다. 그러지 말거라. 동정이라도 좋다. 그러지 말거라. 제발. 분명이 맨 어깨를 잡은 것도 아닐텐데 손이 뜨거웠다. 숨소리가, 갈라진 목소리가, 어깨를 잡은 손이 뜨거워 이와이즈미는 겨우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지옥불과도 같은 뜨거움과 다르게 얼굴은 창백했다. 눈가가 잔뜩 부어있었다. 퉁퉁 부은 눈은 눈물을 쏟아냈다. …도련님. 타카히로 도련님. 이와이즈미는 차마 부르지 못하고 그 말들을 모조리 속으로 삼키며 하나마키를 바라봤다. 그리고 힘겹게 그를 불렀다. …도련님. 그래. 나다. 제발, 제발 가지 말거라. 내가 이리, 이렇게, 흐으, 빌겠다. 난 네게 명령할 줄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 이렇게……. 이와이즈미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곱디 고운 도련님. 사랑하는, …나의 도련님. 어깨를 움켜쥔 손에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잔뜩 누르고 눌러왔던 것들이 한번에 목구멍을 솟구쳐 쏟아졌다. 목이 뜨거웠다. 아프지 마세요……. 이렇게 아프시면, 제가 어찌……. 도련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감히 천한 것이, 천하디 천한 것이……. 잘못했습니다, 도련님.
 이와이즈미는 이곳에 머무르겠다는 말을 힘겹게 전했다. 그리고 거처에서, 바로 하나마키의 방 옆에 있는 작은 방에 머무르며 그를 돌보았다. 몸을 닦아내고 물수건을 가는 것부터 도련님에 관련된 모든 일을 맡아 했다. 중앙으로 떠나있던 가주는 귀한 막내 아들이 혼절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들고 얼마 되지 않아 저택에 왔는데 전말을 전해듣고는 마음 아파했다. 꽃처럼 소중한 아들이었다. 다른 아들도 있으니 제 일을 잇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고, 태어나서부터 병약했기에 그저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랐거늘. 가주는 감히 제 아들을 거절했다는 괘씸한 청년을 만나고 싶어했으나 거처에 머무르며 아들을 돌본다는 말에 만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었다. 당장은 그가 병상에서 일어나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모두의 바람 덕분인지 곡진한 청년의 손길 덕분인지 모르나 하나마키는 겨울이 오기 전에 병상에서 일어났다. 어찌 이리 오래 아프신거냐 조심스레 물었던 이와이즈미는 건강한 것이 더 드물었다는 시종장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며 조심스럽게 도련님의 손을 매만질 따름이었다.
 하나마키가 눈을 떳을 때는 밤이었다. 손을 조심스럽게 덮고 있던 이와이즈미는 조금 졸고 있다가 움찔하며 깼고 이윽고 눈이 마주쳤을 때 조금은 울고 싶었다. …도련님. 일어나셨습니까. 젖은, 가라앉은 목소리에 하나마키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뺨을 만졌다. 그저 뺨을 만지는 것인데도 팔이 묵직했다. 오래, 앓은 것은 조금 오랜만이었다. 야위었구나. 도련님만하겠습니까.  이와이즈미는 그렇게 말하며 뺨을 만지는 손에 기대었다. 도련님, 아프지 마세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눈앞이 까매지더구나. 네 다정했던 것이 다 거짓이었나 싶어 몸이 벌벌 떨렸어. 아닙니다. 언제나 진심이었어요. 도련님. 이와이즈미는 마른 입술을 축이다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타카히로, 도련님. 부디 제가 곁에 있게 해주세요. 도련님. 머리에 아직도 열이 고여있는 것만 같았다. 눈가가 뜨거웠다. 하나마키는 말을 고르다가 치솟는 눈물을 어찌할 줄 몰랐다. …내 곁에 있어주렴. 하지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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